글로벌 인플레이션 지속에 원·달러 환율까지 고공행진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가 극심한 원가 상승 압력에 직면했다. 국내 제약업계는 원료의약품을 비롯해 약을 만드는 핵심 원료와 원부자재 상당 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해 글로벌 인플레와 환율 상승을 회피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
26일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은 “의약품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이어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건강보험 급여 대상 전문의약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업체의 협상으로 결정되는 구조여서 원가가 오른다고 해서 곧장 약가에 반영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반의약품과 비급여 의약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업체는 이미 드링크제, 감기약, 비타민, 파스 등 일반의약품 가격을 올린 상태다.
최근 제약업계가 겪는 가장 큰 원가 상승 압력은 환율이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98.2원을 기록했다. 전날인 23일에는 1302.8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마감된 것은 2009년 7월 13일 이후 약 13년 만이다. 고환율 상황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올해 2월24일 이후 한 번도 1달러 당 1200원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여기에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월 8.5%, 4월 8.3%, 5월 8.6%를 기록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계속되고 있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유가, 원자재, 환율 등이 다 올라 제조원가와 물류비 등도 모두 상승했다"며 “원가 상승분을 업계가 상당부분 떠안아야 해 수익성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 가격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영향을 받아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한국의약품수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원료의약품 수입액은 20억 155만 달러(약 2조 5400억 원)이다. 원료의약품은 의약품의 주 성분을 이루는 필수 원료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자급률은 36.5%에 불과하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국제 가격이 대부분 오른 가운데 고환율까지 겹쳐 수입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며 “국내 제약업계의 의약품 원료 수입 비중이 크다 보니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은 상태”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원료의약품 수입을 국내에서 대체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원료의약품 생산에는 기술과 노하우, 설비, 공급망 등이 필요해 한 국가가 단기에 생산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 원료의약품 주요 생산국은 이 산업 분야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중국, 인도, 일본,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이다. 지난해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6억 8015만 달러, 인도로부터 2억 2353만 달러, 일본으로부터 2억 2035만 달러 어치를 수입했다. 원료의약품 전체 수입액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도·일본 등 3개 국가에 집중된 것이다.
결국 제약업계는 일반의약품과 건보 비급여 대상 전문의약품 가격을 하나둘씩 올리고 있다. 일양약품(007570)은 11일 ‘원비디’ 공급가를 12.5% 인상했다. 일동제약(249420)은 '아로나민씨플러스'의 공급가를 10년 만에 10% 인상하기로 했고, GC녹십자(006280)는 관절통 등에 쓰는 파스인 '제놀쿨'의 공급가를 10% 가량 올린다. 광동제약(009290) 역시 종합감기약 '쌍화탕'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10월과 12월 ‘박카스D’와 ‘박카스F’ 가격을 각각 9~12% 인상했다. 비급여 전문의약품 중에서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격이 최근 올랐다. 공급사인 한국MSD는 ‘가다실9' 가격을 8% 정도 최근 인상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일반의약품 값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 “아직은 제약사 간 눈치보기가 이뤄지고 있지만 누군가가 올리면 모두가 따라 올리는 현상이 조만간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