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임금 인상 너무 빨랐나?…"G5 2.6배 속도, 물가상승 압박" [뒷북비즈]

한국 근로자 1인당 급여 20년간 43% 상승
인건비 부담 커지지만 노동생산성은 못미쳐
높아지는 '임금인플레' 우려…"임금체계 개선해야"

삼성전자 노조의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평균 임금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경고등’이 경제계에서 나왔다.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주요 5개국(G5) 중 가장 높았는데, 노동비용 증가가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년간(2000~2020년) 한국 임금근로자의 1인당 연간 평균 급여 상승률은 43.5%로 나타났다. 이 기간 구매력평가(PPP)를 토대로 산출한 한국 임금근로자의 1인당 연간 평균 급여는 2만 9238달러에서 4만 1960달러로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G5 평균 급여 상승률은 16.5%였다. G5의 평균 급여는 4만 3661달러에서 5만 876달러로 증가했다. 한국의 급여 상승 속도는 G5 평균의 2.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한국은 인구 3000만 명 이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1개국 중 두 번째로 임금 상승률이 높았다.


노동비용의 증가세가 가파른 반면 노동생산성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제조업 근로자 1인당 노동비용은 88.2% 증가했지만 노동생산성은 73.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올해 노사협의회와 9% 임금 인상에 합의했지만 노조는 ‘연봉 1000만 원 인상, 영업이익 25%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이재용 부회장 자택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 기술사무직 노조는 기본급 기준 12.8%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인상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생산성은 그대로고 인건비만 올라가는 상황인데 위기가 찾아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기업의 가파른 인건비 상승 부담은 전형적인 ‘임금 인플레이션(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사회 전반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한 번 늘어난 인건비는 쉽게 줄이기 어렵다보니 경기가 위축돼도 고임금이 유지되면서 경제 상황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 이에 맞춰 임금을 더 올리게 되고, 이로 인해 물가가 더욱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경연 조사에서 지난 10년간(2011~2021년) 국내 상장사의 인건비 증가율은 무려 54.5%에 달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증가율은 17.7%였는데 인건비 증가 속도가 이보다 3배 이상 빠른 셈이다. 상장사 1369개사의 직원 수가 119만 6000명에서 125만 2000명으로 4.7% 늘어나는 동안 이들 회사의 연간 총급여는 65조 원에서 100조 4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주요 기업들의 인재 확보전은 여전히 뜨겁다. 국내 인구 감소 여파까지 겹치면서 비싼 인건비를 지출하더라도 인재를 유치하려는 기업들의 경쟁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1인당 평균 임금이 2020년 1억 2700만 원에서 지난해 1억 4400만 원으로 13.4% 올랐다. SK하이닉스는 9300만 원에서 1억 1500만 원으로 23.7%나 뛰었다. 최근 반도체·배터리 등 주요 산업의 인재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임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개발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전년(1억 240만 원) 대비 26.0% 늘어난 1억 2915만 원에 달했다. 회사의 올 1분기 인건비·복리후생비는 3812억 원으로 전체 영업비용의 24% 수준까지 올라갔다.


카카오(035720)는 올 1분기 인건비가 전년 동기 대비 43% 늘어난 4200억 원을 기록했다. 회사의 평균 임금은 2020년 1억 800만 원에서 지난해 1억 7200만 원으로 무려 59.3%나 증가했다. 그럼에도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올해 인건비 예산(총액)을 지난해 대비 15%나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는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한 데 그친 1587억 원을 기록했다.


늘어난 인건비 부담은 산업 부진 시기에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부진한 실적을 보인 게임업계의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적자 전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넷마블(251270)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119억 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적자 전환했는데 전체 영업비용 중 가장 큰 폭으로 오른 항목은 인건비(434억)였다.


김용춘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은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경직적 노동법제 등으로 수 년 간 기업들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성과, 생산성에 연동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만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적극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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