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를 확대하기 위해 5년간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다.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고급 인력을 7000명 이상 양성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27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본원에서 ‘제1차 AI 반도체 최고위 전략대화’ 행사에 참석해 이 전략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이 예산을 활용해 국내 첨단 AI 칩 연구개발(R&D)과 인프라 조성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과기부는 두뇌의 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한 신경망처리장치(NPU), 데이터 연산과 저장 기능을 합친 프로세싱인메모리, 각종 첨단 반도체 소프트웨어(SW) 개발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과기부는 내년에 토종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가 만든 NPU로 테스트베드(NPU 팜)를 구축해 AI 개발자에게 무상 제공할 방침이다. 미국 등 AI 반도체 선도 국가와 협업도 모색한다. 과기부는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후속 조치로 올해부터 미국과 10억 원 규모 AI 반도체 협력 연구를 진행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참여를 이끌어내 AI 반도체 산학연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계 최고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PIM 반도체를 개발하는 연구 기관에 기술 자문을 제공한다. 과기부는 NPU 국책 개발 과제 가운데 우수한 결과물이 나오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정에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KAIST에서 문을 연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를 통해 학계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간 공동 연구를 돕는 등 유기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AI 반도체 전문 인력도 7000명 양성한다. 정부는 고급 NPU 설계 인력 양성을 위해 내년 3개 대학교에 ‘AI반도체 대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또 3개 학교에 전기전자공학·컴퓨터공학·물리학 등 교육 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AI반도체 연합 전공 개설을 추진한다. 과기부가 공격적인 AI 반도체 투자에 나선 이유는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최근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은 AI 반도체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 사물이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려면 일정하지 않은 수많은 데이터를 빠른 시간 안에 연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중앙처리장치(CPU)가 구현했던 연산 방식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가 필요해진 것이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무주공산이다. 기존 CPU 시장은 전통의 강자 미국 인텔 등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엔비디아, 영국 그래프코어 등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와 스타트업들이 시장 진입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세계 점유율 1%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최고의 메모리 제조 회사는 물론 사피온·퓨리오사AI·딥엑스·리벨리온 등 스타트업들이 기술 확보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AI 반도체 기술 역량 역시 선진국 대비 89% 정도로 경쟁력이 부족한 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력이다.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 기술을 개발하려면 고급 설계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사, 소재·부품·장비 업계에는 연간 3000여 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AI 반도체에 도전하는 국내 회사들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향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휴대폰·데이터센터 등 우리가 보유한 탄탄한 전방 주요 사업과 AI 반도체 기술을 연계하면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충분히 선점할 수 있다”며 “산학연 간 유기적인 협력을 위해 정부도 힘껏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