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기시다, 한일관계 개선 확신"…기시다 "더 건강한 관계 노력하자"

[한일관계 5년 만에 해빙무드]
기시다, 먼저 尹 찾아 취임축하 인사
尹도 "선거 좋은 결과 기원" 화답
스페인 국왕 만찬서 3~4분간 덕담
소원했던 양국 관계 개선 의지 표명
내달 한일 외교장관 회동 이뤄질듯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 기념 촬영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나토정상회의 사무국

29일(현지 시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틀간 개최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양국 관계의 개선 의지를 국제사회에 얼마나 보여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중국과 북한이 나토의 비회원국인 한국과 일본의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것도 경제·군사 강국인 한일의 관계 개선이 아태 지역 정세를 뒤흔들 만큼 파괴력이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정작 29일 나토 정상회의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약식 회담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들리며 관계 개선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다음 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 측이 국내 정치를 문제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적막을 깬 것은 오히려 일본이었다. 28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주재로 열린 만찬 행사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취임과 지방 선거 승리를 축하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도 참의원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원한다”며 “나와 참모들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한일 간의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갈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에 “감사하다”고 답한 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일 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 정상의 대화가 3~4분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깜짝 만찬 대화’는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한일 관계가 경색됐고 한미일 공조마저 균열이 생긴 상황이 5년간 이어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7년 5월 문 대통령의 취임 첫 통화부터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양국의 경색은 2017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세 나라의 공조까지 흔들어 놓았다. 정상회담에서 의제인 북핵 문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을 강조하며 한미일 간 입장 차가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후에도 한일은 강제 징용 기업 배상 문제와 위안부 합의 파기 문제로 각을 세우며 무역 보복에 나서는 경제 분쟁 상황까지 갔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2019년부터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는 ‘8초 인사’에 그쳤다. 양국은 문재인 정부 끝까지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직접 찾아 인사를 건네면서 양국이 관계 개선에 나선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태평양 4국 정상회담 직후 기시다 총리에 대해 “한일의 현안들을 풀어가고 또 양국의 미래 공동 이익을 위해서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하게 됐다”고 강한 신뢰를 표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지난 5년간 굳어 있던 양국 간 경색된 관계를 풀면서 한미일 삼각 공조도 부활을 알렸다. 한미일은 이날 마드리드에서 2017년 9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세 나라 정상이 참여하는 정상회담을 열었다. 세 나라 정상은 주요 의제인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도발 문제에 대해 강력한 협력 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 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을 강화하고 북핵과 관련해 3국의 안보 협력 수준을 높여가기 위해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2017년 회의에서 미일과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이견을 보였지만 4년 9개월 만에 다시 모인 세 나라 정상은 다시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나아가 세 나라 정상은 한일이 미국과 함께 아태 지역에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도 공유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고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와 인태 지역 전략을 언급하며 “한미일 3각 협력은 우리의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북한의 추가 도발 행위의 가능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미일 동맹, 미한 동맹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해 한미일의 공조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지역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법치주의를 공유하는 한미일 간의 협력이 긴요해야 한다는 점을 공감했다. 한미일이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체제를 가진 중국·러시아와 다른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일 간의 관계가 회복 수순에 돌입하면서 일본 참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7월 이후 양국 간의 외교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음 달 박진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이 유력하다. 양국이 외교장관 회동을 통해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9일 광화문 앞에서 전국민중행동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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