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이 1년 내로 갚아야 할 부채가 1년 만에 약 1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례 없는 물가 상승으로 한국은행이 7월 중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기업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들은 신규 투자보다 비용 절감을 우선하는 축소 경영으로 속속 돌아서고 있다.
30일 서울경제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금융회사와 한국전력 제외)의 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총 유동부채가 올 3월 말 기준 396조 741억 원(연결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357조 5666억 원에 비해 10.8% 늘어난 액수다. 유동부채는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부채로 단기차입금·외상매입금·지급어음 등이 포함된다. 유동부채 규모가 늘수록 기업의 단기 상환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플랫폼 등 신규 투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업종 내 기업들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 SK하이닉스(000660)의 유동부채는 1년 새 약 70% 늘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200% 넘게 급증했다. 해외 배터리 공장 증설이 한창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삼성SDI(006400)는 각각 45%, 35%씩 늘었다. 카카오(035720)의 유동부채는 1년 만에 86%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20개 기업 가운데 유동부채가 감소한 기업은 기아(000270)·두산에너빌리티(034020)·㈜LG(003550) 등 3곳에 불과했다.
재계에서는 당장 7월 중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이자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이에 주요 대기업은 신규 투자를 줄이고 비용을 감축하는 등 축소 경영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28.0%는 올 하반기에 상반기보다 투자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주요 그룹의 미래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가운데 기업의 재무 리스크가 가중됐다”며 “원재료 수입 비용과 이자 비용이 모두 늘고 있어 기업들은 전반적인 비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