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포트]주먹구구 정책사업이 자초한 부메랑…'8개의 환부' 도려내야

■공공기관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민간과 경쟁 늘려야 자발적인 개혁 가능
전기 등 억눌렀던 공공요금 현실화 필요
사업기능조정 통해 불필요한 인원 줄여야
철밥통 양산 논란 호봉제도 개편도 시급
기관장 공모제 없애고 장관추천제 도입을
기재부가 도맡아 온 관리체계도 분산 필요
비효율적인 경영평가 체계·지표 수정하고
'거수기 이사회' 대수술해 경영진 견제를






공공기관 개혁이 화두다. 공공기관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우리 공공기관의 성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하다. 문제는 비용이 과다하다는 점이다. 부채가 그 결과다. 2021년 말 기준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583조 원이고 자본 대비 평균 부채비율은 151%다. 민간기업의 경우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면 위험 상태로 간주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공공기관이 10여 개나 된다. 공공기관 부채는 결국 후대의 부담으로 남는다. 어떻게 부채를 해결하고 공공기관을 효율화할 수 있을까.


부채 감축 위한 공공기관 개혁

공공기관은 정부에 매우 편리한 존재다. 정책 사업을 재정으로 하려면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거쳐야 하는데 공공기관에 맡기면 부채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부처는 별 부담 없이 사업을 벌인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시켜 꾼 돈이니 굳이 절약하지 않는다. 부채가 좀 부담스럽지만 정부 탓을 하면 된다. 발주 사업이 늘어 영향력이 커지는 즐거움도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동시에 헤퍼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19년 현행 암묵적 정부 보증을 보증 수수료로 공식화하는 제도를 제안한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과도한 정책 사업을 자제해야 하며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민간 몫인 이윤을 차지하거나 기업 옥석 가리기 등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공공기관이 스스로 개혁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예컨대 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담할 것이 아니라 바우처 확대로 민간기업에 길을 열어야 한다.
요금도 부채의 한 요인이다. 정부는 그간 요금을 억눌러왔다. 수도·철도·도로·전기 등 공공요금의 원가 보상률은 대체로 80~90%에 머무른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낮은 공공요금은 부채만이 아니라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개문(開門) 냉방, 전기장판 등이 우리나라에 유독 많은 것은 낮은 전기요금 때문이다. 공공요금은 원가 수준으로 올려줘야 한다. 이때 공공기관이 경영 효율화로 원가를 더 낮출 여지가 있는지 정부가 검증해야 한다. 비용 절감 여지가 있는 기관에는 자구 노력을 요구하되 최선을 다한 기관의 공공요금은 올려주는 것이다.
사실 공공기관 인력은 민간에 비해 대체로 과도하다. 사람을 뽑으면 노조원이 생기고 보직도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사람을 더 뽑으면 경영평가 점수를 올려줬다. 그 바람에 최근 5년간 공공기관 임직원은 35% 증가했다. 향후 직무 분석을 통해 공공기관의 적정 인원을 산정하자. 그리고 기능 조정에 의해 사업이 줄면 그만큼 적정 인원을 줄이자. 현원이 적정 인원을 초과하면 경영평가에서 감점 사항으로 하면서 점진적 감축을 유도하기를 권한다.
인력 조정보다 시급한 것은 임금체계 개편이다. 공공기관은 대체로 호봉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노동비용 상승, 자기 개발 노력 약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의 연공급 비중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1년 차 대비 30년 차 연봉 비율이 유럽연합(EU) 15개국은 평균 1.65배인데 우리는 2.87배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이번 정부는 호봉제 폐지를 꼭 이뤘으면 한다. 호봉제 요소를 탈색하는 정도에 따라 기관별 임금 상승률을 차등화할 것을 제안한다.

공공기관 관리 방식을 개선해야



부적격 기관장은 노조에 약점 잡혀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다. 현재 기관장은 임원추천위원회의 공모 및 복수 선정을 거쳐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 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무늬만 공모제지 사실상 내정이 대세이다. 낙하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정을 공모제로 포장해 대통령실이 책임 없이 부적격 낙하산을 보낸다는 것이다. 절차에 3~4개월이 소요되는 불필요한 공모제를 폐지하자. 그 대신 장관이 책임지고 기관장 후보를 공운위에 단수 추천하게 하자. 물론 대통령실에서 아무개를 추천하라고 장관에게 연락할 것이다. 그래도 장관이 공식 추천한다면 대통령실도 부적격자를 밀어넣기 미안할 것이다. 임명 이후 그 기관장이 경영평가 결과 해임 건의를 받게 되면 해당 기관장 임명에 찬성표를 던졌던 민간 공운위원은 해촉하자. 공운위원에게 정부의 협조 요청을 거부할 명분을 줘야 한다. 기관장 임기는 현행 3년+1년+1년으로 돼 있는데 이를 2.5년+2.5년으로 해 대통령 임기와 맞추는 것이 좋겠다. 아울러 감사 자격을 규정한 공운법 30조의 ‘그 밖에…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부적격 인사에게 문을 여는 조항이니 삭제하기를 권한다.


현재 공공기관 관리는 기재부가 도맡고 있다. 공공기관의 증원 요청, 예산 협의는 물론이요, 사고가 터지면 기재부도 관리 소홀로 뭇매를 맞는다. 기재부는 사전 통제는 주무 부처와 기관별 이사회에 넘겨주고 경영평가를 통한 사후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기재부가 직접 관리하는 기관 수를 줄이고 주무 부처의 관리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 대신 기재부는 공공기관 기능 조정 등 주무 부처가 못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편 공공기관 지정은 확대하기를 권한다. 많은 사실상의 공공기관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다. 추가 지정된 공공기관을 주무 부처 관리 대상으로 하면 큰 저항은 없을 것이다.


기재부 관리의 핵심 수단인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의 성과 제고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는 공공기관의 부담이 너무 크다. 매년 하는 경영평가는 계량 평가만 시행하고 비계량 평가는 기관장 임기 만료 직전에 기관별 평가단을 꾸려 시행하자. 평가 지표도 계량 지표 비중 상향, 일자리 창출 지표 폐지, 재무 건전성 지표 강화 등 개편이 필요하다. 아울러 경영 효율화 노력을 지표로 추가하기를 권한다. 호봉제 폐지, 기능 조정 등 스스로 개혁에 나서는 기관에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끝으로 공공기관의 자율성도 확대돼야 한다. 기관별 이사회를 강화해 자율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사회를 전원 비상임이사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 사장과 본부장 등 내부 경영진은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하면 된다. 현재 항만위원회가 이러한 구조이다. 또한 정부이사를 부활시켜야 한다. 지금도 이사회 안건은 기재부, 주무 부처와 협의를 마친 후 상정된다. 아예 이사회에 출석해 발언하도록 해야 정부의 개입이 공식화되고, 그래야 개입이 축소된다. 상장 공기업에 대해서는 더 높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공공기관 개혁을 넘어서

공공기관 개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개혁의 단초가 돼야 한다. 사실 공공기관 개혁을 파다 보면 결국 정부 개혁이 필요해진다. 예컨대 호봉제 폐지는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공무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은 결국 정부의 기능 조정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정부 개혁도 종착역은 아니다. 경제위기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공기관 및 정부 개혁으로 솔선수범한 후 노동·금융·기업 개혁에 착수한 것을 기억하시는가. 소위 IMF 경제위기 이후 25년이 흘렀다. 전반적인 국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박 교수는…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1992년 입사한 KDI에서 30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공공기관 개혁을 담당했으며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국회미래연구원장을 지냈다. 좌우에서 인정받는 중도적 학자로 남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삼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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