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What] 총기·낙태권 이어…美대법, 이번엔 온실가스 감축 제동

"EPA, 온실가스 규제권한 없다"
석탄화력발전소 손 들어줘
백악관 "파괴적 결정" 비판
유엔도 “기후변화 투쟁 후퇴”
대법관 '보수 절대우위' 구조
판례 뒤집기 등 우클릭 지속

미국의 첫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자인 커탄지 잭슨(왼쪽·51)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대법원에서 은퇴하는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오른쪽·83)을 마주한 채 성경 위에 왼손을 올리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총기 문제 등에 연달아 보수적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도 제동을 걸었다. 기후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백악관·유엔의 비판과 함께 보수 우위로 짜인 대법원의 ‘우클릭’ 행보가 미국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6월 3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미 대법원은 연방환경보호청(EPA)이 대기오염방지법을 토대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권한을 갖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은 "미국 내 전력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석탄이 사용되지 않는 수준까지 제한하는 것은 현재 (기후)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면서도 "이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 또는 의회의 명확한 임무를 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전환, 온실가스 규제 정책이 EPA가 아닌 의회 소관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번 판결로 2015년 EPA의 규제안이 촉발한 논쟁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당시 EPA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의 일환으로 석탄화력발전소에 생산량을 줄이거나 대체에너지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나 대법원의 저지로 실행되지 않았다. 이후 온실가스 감축 권한을 놓고 산업계 및 공화당 측 주 정부들과 EPA 간의 갈등이 이어지다 지난해 제기된 소송에서 대법원이 석탄 회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판결로 대기오염방지법에 기반한 EPA의 정책은 힘을 잃게 됐다.


대법원은 판결 근거로 ‘중요문제원칙’을 내세웠다. 이는 경제·정치적으로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법원이 행정기관의 제정법 해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리다. WSJ는 “EPA를 넘어 재무부·증권거래위원회·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등 다른 규제 당국을 통한 기후변화 대처 능력까지 모두 억제될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절반 감축’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은 "우리나라를 후퇴시키는 파괴적 결정”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모든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별 회원국 비판을 자제하는 유엔도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투쟁을 후퇴시켰다"는 성명을 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8명 중 보수 성향인 6명의 다수 의견으로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보수 성향 인사가 3명 연속 임명된 뒤 이례적으로 보수화된 미 대법원이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 수립된 주요 판례·법안들을 거침없이 뒤집고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평가다. 지난달에는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됐고 공공장소 내 총기 휴대 등을 제한한 뉴욕 주법에도 위헌 판결이 내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날 진보 성향의 커탄지 잭슨 대법관이 공식 취임했지만 대법원 내 6 대 3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는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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