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루나·테라 폭락 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히 빠진 암호화폐 가격이 시장 전반에 파괴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 큰손’으로 꼽히던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즈캐피털(3AC)가 파산한 이후 3AC에 자금을 대줬던 기관들이 잇따라 인출 중단 등의 조치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관련 기관들의 도미노 파산까지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 보이저 디지털은 전날 거래·예금·인출 등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보이저는 캐나다 토론토 증시에 상장된 주식이 올 들어 96% 하락하는 등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재정난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보이저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빌린 3AC가 파산한 것이 꼽힌다. 보이저는 현재 시세 기준 6억 4600만 달러(약 838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실제 자산에 가치가 연동된 암호화폐)을 3AC에 대출해줬지만 지난달 말 3AC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안 그래도 하락하던 암호화폐 가격이 올 5월 루나·테라의 폭락을 계기로 대거 빠지면서 그 여파가 3AC와 보야저에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6만 7500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2일 기준 1만 9272달러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3AC 파산의 영향이 보이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콩 소재 암호화폐 거래소 8블록스캐피털은 3AC가 100만 달러 상당의 자산을 빌려갔지만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디파이(DeFi·탈중앙화) 업체 카이버네트워크 역시 3AC로부터 자금 일부를 상환받지 못한 상태다. 앞서 지난달 인출 서비스 중단을 발표한 또 다른 디파이 업체 셀시우스를 둘러싸고도 파산 준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했던 2007~2008년 금융위기처럼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코인셰어즈의 크리스 벤딕스는 “2018년만 해도 암호화폐 시장엔 이런 일이 없었다”며 “이제는 모든 것들이 깊고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평가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관들이 서로 자금을 빌려준 결과 위기에 취약해졌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선 파국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보이저에 대한 신용대출 만기를 연장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 역시 셀시우스가 보유한 자산 인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