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골목상권 다 못살린 의무휴업…"지자체에 자율성 줘야"

[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2부. 규제 주머니 OUT
<9>이념의 덫에 걸린 유통산업발전법
대형마트 쉬는날 주변 소비 15%↓
온라인 커지면서 오프라인 역차별
대형유통사 규제 10년 실효성 없어
日·佛 등 출점·영업규제 완화 추세
홍준표 '대구 주말영업 허용' 주목
"도시경제 차원 고려…법 개정 필요"
플랫폼 규제 등 모래주머니도 개선을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유통산업 발전은커녕 되레 발목만 잡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새 정권 출범 후 다시 고조되고 있다. 유통 업계에서는 최근 홍준표 대구 시장이 대형마트 휴일 의무 휴업 등의 문제점에 공감을 표한 데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히면서 이를 계기로 서둘러 관련 규제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 업체 월간 매출액 중 5월 기준 대형마트의 비중은 14%까지 줄었다. 2017년(23.2%)과 비교하면 9%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온라인 매출액 비중은 33.9%에서 48.2%로 14%포인트가 증가했다. 쇼핑 방식이 점차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도 한 요인이지만 이 같은 상반된 흐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대형마트에 씌운 각종 규제가 먼저 꼽힌다. 2012년 정부는 중소상인과 골목상권을 대형마트로부터 지켜내자는 취지로 대형 유통사에 대한 출범·영업규제를 시행했다. 대형마트와 SSM이 오전 0시부터 10시 사이에는 영업을 못하도록 막고 매달 1~2회씩 의무 휴업을 하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시작이었다.


유통산업 ‘발전’ 아닌 ‘억제’…소비자도 외면

그러나 이 법은 ‘유통산업 억제법’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체인스토어협회가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무 휴업 규제 효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 주변 반경 3㎞에서는 평균 8~15%가량 소비 금액이 감소했다.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도 요원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4일 최근 1년 이내 대형마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7명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이 중 70%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대형마트 규제에도 전통시장 상권이 살아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해외에서도 대형 유통사에 대한 각종 규제를 없애거나 지자체 자율로 돌리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2008년 경제현대화법을 통해 유통산업의 진입 규제를 완화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경제산업부 장관이던 2015년 소매점에 일괄 적용하던 일요일 휴업 제한을 완화했다. 일명 마크롱법으로 국제 관광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백화점과 상점은 1년 내내 일요 휴무 없이 영업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대규모소매점포입지법’을 통해 30여년간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했으나 소비 위축 등의 부작용이 이어지자 2000년부터 관련 규제를 전면 폐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규제 강화는 규제 우회를 통해 무력화되기 쉽고, 인터넷 거래와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된 유통 환경을 생각해보면 물리적 상점에 대한 영업 규제는 불필요한 부작용만 낳았다”며 “사업 조정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효율성 증진을 위한 정책 모색에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업시간 및 출점의 경우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업 환경이나 상황에 맞춰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고 출점 역시 ‘중소업체 보호를 위한 억누르기’가 아닌 ‘도시경제 및 계획’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홍 시장은 최근 대형마트 주말 영업 허용을 주요 정책 과제로 선정하고 세부 사항 논의에 들어가 귀추가 주목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의 경쟁 상대는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이 아닌 e커머스 업체들”이라며 “영업시간 제한을 지자체별로 자율성을 줌과 동시에 이를 법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여당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대형마트의 영업 규제 완화를 위한 논의에도 불이 붙는 분위기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등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이 가능하도록 규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중개업체가 왜 책임을?…발목 잡는 플랫폼 규제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추진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 전자상거래법 전면 개정 등 주요 플랫폼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도 기업의 대표적인 모래주머니로 꼽힌다. 온플법은 플랫폼이 불공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상법은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할 시 상품 및 거래에 대한 책임을 판매자뿐 아니라 중개 업체인 플랫폼도 지게 하겠다는 법안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과 견줘 국내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해당 규제들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또 전상법의 경우 입점 판매자의 잘못에 대해 단순 중개 역할만 하는 플랫폼도 책임지게 하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자율’에 방점을 찍은 규제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같은 목소리를 반영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자율 규제 기구 설립과 지원을 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연내 디지털플랫폼 발전 전략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자율 규제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율 규제가 반갑지만 기업의 책임이 무거워지고, 또 한편으로는 규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 송출수수료 현실화 ‘공적 역할’ 절실

홈쇼핑 업계의 송출 수수료 현실화도 유통시장 발전을 위한 과제로 꼽힌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1년도 방송사업자 재산 상황 공표 주요 현황’에 따르면 홈쇼핑 12개사의 지난해 매출 대비 송출수수료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한 58.9%를 기록했다.


쇼핑 방식이 e커머스로 점차 옮겨가는 상황에서도 송출료 부담은 매년 불어나는 추세다. 이에 업계에서는 수수료 현실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쇼핑과 유료방송 모두 정부 승인·허가가 필요한 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소관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한 채 논의에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갈등의 기본이 수수료 산정에 있는 만큼 논의 당사자와 제3자(중립)가 참여해 만드는 ‘권고 지표’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각종 경제지표나 업황을 고려한 수수료 규모를 도출해 이를 권고해 사업자들이 범위 안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을 정부가 적극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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