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시작한 사회적기업…이젠 발달장애인 5만명 취업이 꿈"

[이사람-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어릴적 이사만 18번 다녔던 흙수저 출신
삼성SDS-네이버 창업멤버로 승승장구
국감서 질책·번아웃에 2009년 돌연 은퇴
세계여행 떠나 케냐 사회적기업서 영감
직원 300명·매출 100억 '베어베터' 키워
10여년간 발달장애인 고용 확대 기여
김범수 요청에 사회공헌재단 이사장 맡아
임기내 무보수로 장애인 일자리창출 올인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권욱 기자

“제가 김범수 창업자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지는 않습니다.”


김정호(55) 베어베터 대표는 5월 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만든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이사장직을 무보수로 수행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같이 말했다. 브라이언임팩트는 김 창업자가 지난해 6월 본인의 전 재산(10조 원)의 절반을 사회 문제 해결에 쓰겠다고 선언하며 설립한 사회 공헌 재단으로 직전까지는 본인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김 창업자와 삼성SDS·한게임 시절 동고동락했던 동료이기도 한 김 이사장은 “본인 재산의 절반을 내놓으며 진정성 있는 사회 공헌을 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거기 붙어 비용을 쓸 수는 없다”며 “급여는 물론 업무 수행을 위한 일체의 비용도 받지 않기로 했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가오’가 있는 만큼 김 이사장도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다. 김 이사장은 2012년 발달장애인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설립해 철탑산업훈장·한국윤리경영대상 등도 받았다. 현재 300여 명을 고용하고 있고 이 중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다. 김 창업자도 김 이사장의 이 같은 성과를 높이 평가해 먼저 차기 이사장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김 창업자에게 “우회적으로 주식을 소유할 것인지” “자녀를 상임이사로 세워 증여를 해줄 심산은 아닌지” 등을 수차례 반문했고 “절대 아니다”라는 답을 이끌어낸 후에야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김 이사장은 “하도 물었더니 김 창업자가 ‘사람을 이렇게 못 믿나’라고도 했다”며 “혹시나 이사장직을 수행하다가 괜한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김 창업자를 계속해서 ‘인터뷰’한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버지가 큰맘 먹고 사주신 애플2…벤처 신화 밑거름 돼”


사실 김 이사장은 김 창업자 등과 함께 초창기 인터넷 산업을 일궜던 ‘벤처 1세대’ 주역이다. 1990년 삼성SD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9년 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등과 함께 퇴사해 네이버를 공동 창업했다. 이후 2009년 네이버 주식을 처분하며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세금 떼고 400억 원을 벌어들였으니 ‘원조 파이어족(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는 자를 이르는 신조어)’인 셈이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스스로를 ‘졸부’라고 자처한다. 그는 “2002년 네이버 상장 전까지만 해도 가진 게 1억 원뿐이었다”며 “이 돈도 삼성SDS를 다니던 9년 동안 월급은 한 푼도 안 쓰고 오직 인센티브와 출장비로만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독할 정도로 저축에 매달린 배경에는 넉넉지 않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김 이사장은 “기업 대표의 수행 기사 일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만 18번 다녔다”면서 “대표님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무조건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대학 재학 당시에도 생맥줏집, 막노동, 비닐하우스 농사, 테니스 강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꿈은 싹텄다. 김 이사장이 중학생이던 1980년대 초반에 당시 아버지가 큰 마음 먹고 ‘애플2’ 컴퓨터를 사주셨던 것이다. 당시 애플2는 중고차 한 대 값에 버금가는 가격이었다. 덕분에 김 이사장과 여동생 모두 컴퓨터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소프트웨어 개발력을 갖춘 채로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삼성전자 국내 영업 부문으로 삼성그룹에 처음 입사했던 그가 돌연 SDS행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회사에서 신입 사원 500명을 불러놓고 ‘SDS에 공석이 한 자리 났는데 갈 사람 있냐’라는 얘기에 혼자 손을 번쩍 들었다”며 “원래 꿈꿔왔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는 달리 그가 처음 배치된 곳은 인사팀이었다. 하지만 인사 업무를 통해 김 이사장은 최신 기술 트렌드를 읽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김 이사장은 “해외 석·박사 채용 업무를 담당하면서 숱하게 해외 출장을 다니고 매주 박사 논문을 읽고 분석했다”며 “이 업무를 3년 반 동안 하다 보니 미래에는 네트워크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확신을 바탕 삼아 그는 1999년 SDS를 과감히 퇴사하고 네이버 창업 멤버로 합류한다.


창업 후 네이버가 수차례 부도 위기를 겪었을 때도 김 이사장은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 가교 역할을 하며 해결사 역할을 한다. 네이버는 당시 하루 접속자만 수만 명에 달하던 한게임과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며 압도적인 1등 검색 엔진으로 올라선다. 김 이사장 또한 한게임 중국법인 대표, 한게임 대표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2009년 돌연 모든 직을 내려놓으며 네이버와도 결별한다. 김 이사장은 “여러모로 번아웃이 왔던 상황에서 국정감사에 불려가 질책을 당한 게 결정타가 돼 홧김에 사퇴했다”고 회상했다.



케냐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사회적기업에 ‘충격’…사회사업가로서 제 2의 인생 시작


은퇴 후 3년간 김 이사장은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자유를 즐긴다. 그는 “더운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동남아 빼고는 거의 모든 곳을 다 가봤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2012년 다시 기업 대표로 나선다. 달라진 점은 IT 기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 또한 ‘홧김’의 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케냐 여행에서 우연히 ‘카주리(kazuri)’라는 미혼모 대상의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된 게 시작이었다. 이 회사는 미혼모들을 비즈 공예 디자이너로 고용한다. 영국 유명 디자이너들이 재능 기부를 통해 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들이 생산한 제품은 영국 백화점에 납품해 수익을 창출한다. 김 이사장은 “이런 모델의 사업이 존재하고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걸 사회적 기업이라고 부르더라”고 했다.


귀국 후 네이버 동료들을 만났을 때 이때의 경험을 얘기하자 이내 “사회적 기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가 돌아왔다. 알고 보니 동료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둔 이들이 있었던 것. 이에 김 이사장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네이버 인사 임원 출신 이진희 대표와 함께 베어베터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10명 남짓으로 조촐하게 시작했지만 발달장애인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며 이내 판을 크게 키우기로 결심한다.


“발달장애 가정의 비극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며 시작됩니다. 발달장애인 가정은 80%가량이 편모 혹은 조손 가정입니다. 아이가 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하면 결국 집에만 머무르게 되고 엄마는 24시간 옆에 붙어서 돌봐줘야 합니다. 아이도, 엄마도 수입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결국 아이가 일자리를 구해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선의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선의에 기대지는 않았다. 기업가 출신인 만큼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했다. 장애인 고용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장애인표준사업장 ‘연계 고용’을 하면 과태료를 일부 감면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 법 조항에 주목했다. 베어베터가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쿠키·명함·화환 등을 납품하면 기업은 거래 금액의 절반까지 과태료를 탕감 받을 수 있도록 사업을 설계한 것이다. 최신식 장비와 철저한 교육을 동원해 품질 경쟁력도 놓치지 않았다. 이 결과 500곳 넘는 고객사가 몰려들었다. 김 이사장은 “과태료도 탕감 받고 필요한 물품까지 공급 받으니 기업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철저하게 ‘될 사업’으로 만든 덕에 베어베터는 지난해 기준 직원 수 300명, 매출 1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컸다. 영업이익은 전부 직원들에게 배분하고 김 이사장은 10년간 월급 한 푼 받지 않았다.



“많은 발전 있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시골 발달장애인 일자리까지 챙기는 게 목표"


베어베터가 지난 10년간 남긴 족적은 발달장애인 고용률 지표 성장에서도 확인된다. 2010년 기준 20.9%에 머물렀던 자폐성 장애인 고용률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 결과 지난해 28.1% 수준까지 올랐다. 김 이사장은 “물론 베어베터 혼자 일군 성과는 아니지만 10년간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게 사실”이라고 자평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이제는 대기업들도 발달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SK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9년 김 이사장은 최태원 SK 회장을 앞에 두고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직언을 날렸다. 최 회장은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고 실제로 그해에만 장애인 800여 명을 추가 고용하고 2020년에는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초과 달성한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김 이사장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말한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지방 발달장애인의 취업 문제다. 전체 발달장애인의 66%가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취업률은 턱없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내 발달장애인 취업 비율은 30% 수준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 비율이 5% 수준으로 급감한다.






김 이사장이 최근 대구에 중증장애인 사업장 ‘브라보비버’를 만든 것도 이 같은 문제 의식에서다. 브라보비버는 김 이사장이 새롭게 고안한 ‘콘도 계좌식’ 모델로 대기업이 지분 투자를 한 만큼 장애인 고용을 인정받을 수 있다. 김 이사장은 “브라보비버에 월급으로 주는 돈이 기존에 나가던 과태료보다 적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ESG 지표도 달성하고 비용도 절감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 차관이 베어베터를 방문해 브라보비버 모델의 전국 확산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다만 지분 투자형 모델도 지방 소도시로 내려가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김 이사장은 김 창업자의 지원을 받아 브라이언임팩트재단에서 이 문제를 적극 해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대 3만~5만 명의 발달장애인 고용 창출이 목표다.


김 이사장은 “발달장애인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인·노숙자·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의 발달장애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 고용 창출이 소수자 문제 전반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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