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첩보, 액션, 스릴러물을 많이 봤는데, ‘헌트’만의 새로운 첩보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액션 장면은 그 자체보다 직전까지 감정을 얼마만큼 밀어붙여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들지가 중요했고, 콘티 작업할 때는 무술팀, 특수효과팀, 소품팀, CG팀 등 다 모셨어요. 팀별로 다 모아서 액션 콘티를 짠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배우 이정재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인 영화 ‘헌트’의 다음 달 10일 개봉을 앞두고 다른 액션 영화와의 차별화된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5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헌트’의 제작보고회에서 “영화 일을 하면서 액션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해 본 경험이나 좋은 액션이 나오는 영화의 기억을 반영하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헌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조직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안기부 요원들의 혈투를 그린 첩보·액션물이다. 이정재는 작전 실패 후 스파이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는 주인공인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 역할을 연기한 건 물론 연출과 각본도 맡았다. 배우 생활 30년을 바라보는 이정재지만,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동료 배우에게 건네며 ‘같이 하실래요’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많이 주저했다. 그런데 좀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들며 중시한 부분은 액션에도 인물 간의 긴장감이나 갈등을 담아내려고 한 점이었다. 이정재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편집을 거쳐가며 좀 더 박진감 있고 스피디하게 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미장센을 꾸밀 때는 스크린 구석의 디테일까지 효과를 줬고, 국가예산을 많이 쓰는 안기부 같은 곳이 낡은 것을 쓸 리가 없다는 생각에 소품은 최대한 상태가 좋은 것들로 사용했다. 스토리에서는 조직 내 스파이를 서로 의심하며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구조를 생각했다.
이 작품은 절친한 사이인 이정재와 정우성이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만에 같이 출연하기에 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우성은 박평호와 서로를 간첩으로 의심하며 갈등을 형성하는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 역할을 맡았다. 날 선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현장에서 이정재와의 대화를 줄이려 노력했다는 정우성은 “배우들이 편한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하모니를 조율하는 일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우성이 출연 제안을 네 번이나 고사했다는 사실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우성은 “그동안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두려움과 조심스러움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과물을 두고는 “부끄럽지 않게 노력한 만큼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정재는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투톱 구조의 시나리오가 그리 많지 않아서, 적합한 프로젝트를 찾다가 시간이 걸렸다”고 돌아봤다.
‘헌트’에는 또 전혜진이 안기부 해외팀 에이스 방주경을 연기하며, 허성태가 안기부 국내팀 요원 장철성 역을 맡아 각각 이정재·정우성과 한 팀을 이뤘다. 전혜진은 “두 분(이정재·정우성)을 한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간절했던 것 같다”며 “이정재 선배님이 제게 시나리오를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허성태도 "두 분 사이에서 제가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촬영 현장도, 지금도 꿈만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