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6월 한 달 94억 3000만 달러나 급감하며 2008년 11월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다. 1300원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썼지만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 반년 사이 248억 달러가 사라지며 보유 외환은 1년 7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외환보유액이 4382억 달러로 세계 9위이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외화 실탄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한국 등 아시아 7개국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는 이런 점에서 섬뜩하다. 올 2분기 이 국가들에서 이탈한 자금은 400억 달러로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와 맞먹는다. 우리로서는 환란의 비상벨이 다시 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이 3분기 마이너스 성장(-2.2%)에 이어 1년 내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미국의 금리 역전이 임박한 터에 경기가 가라앉고 보유 외환까지 이상 징후를 보이면 외국인의 동요는 극심해질 것이다.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축배 1년 만에 외환 위기를 맞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시 지표는 이미 외환·금융 위기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6.0%를 찍었다. 한국은행이 다음 주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한계 가구와 기업의 부실은 급증할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1분기 국민고통지수는 10.6으로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환란의 무풍 지대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서둘러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를 매주 주재하겠다면서 위기 대응 사령관을 맡겠다고 한 것은 다행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우선 외국인 이탈을 막기 위해 미국·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재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금융·자산 시장 붕괴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외환·금융 위기 당시 동원한 비상 대책들을 즉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위험이 예고됐는데도 대비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