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진정한 유산(遺産)

김영식 전 제1야전군사령관 (예비역 대장)

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 사진제공=육군

자손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증여에 부과하는 세금이 우리의 생활 수준에 맞지 않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유산은 선조가 남긴 가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을 남겨주는 것이 진정한 유산인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사람은 자기가 떠나더라도 자신의 일부가 뒤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성장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조직이 생긴 가장 큰 이유가 의미 있는 유산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수히 많다. 리더십 이론에서 강조되거나 성공한 리더들이 주장하는 리더의 자질과 역할을 살펴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할 뿐 아니라, 그것의 중요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재의 문제를 뛰어넘어 조직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첫째는 조직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자기 이후에 조직을 이끌어갈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비록 훌륭한 비전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할 후계자를 육성하지 못하면 유산의 계승은 허망하다. 로마의 오현제(五賢帝) 시대를 이끌어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능력도 없는 자기 아들을 다음 황제로 지명함으로써 로마 쇠망의 단초를 제공했던 반면에,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이라는 후계자를 미리 준비하여 후계자 리스크가 매우 클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으며 '잡스 없는 애플'의 성장을 보장했다. 유산을 제대로 남긴 것이다.


리더는 조직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찾아서 육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소금마차를 끌던 말은 황제를 태우고 천하를 질주한 천리마가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현명한 리더는 누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인재인지를 찾아서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역량을 발현시켜주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육군 참모총장 마셜은 전투능력이 부족한 수많은 장군과 대령을 가차 없이 해임하면서도 숙적 맥아더와 가까웠던 아이젠하워를 발탁해 유럽연합군 총사령관의 중책을 맡겼다. 마셜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평생 멘토였던 퍼싱 원수에게서 배운 것이라니 유산의 계승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늘의 태양은 편애함이 없이 골고루 빛을 뿌려주지만, 땅의 꽃들은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제각각 피어난다(天日無私 花枝有序). 주변에 아직 피우지 못한 꽃이 있더라도 버리지 말자. 미래의 천리마인데 때가 안 되어서, 아니면 키워줄 리더를 만나지 못해 미완의 상태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찾아 키워 미래의 인재로 만드는 게 진정한 유산을 남기는 행위이다. 사람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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