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생 빈자리 편입생 채워라"…돈줄 마른 대학들 '동아줄'로

[대학 '노마드 시대']
◆서울 주요대 편입모집 인원 43%↑
정시확대 등에 반수생 사상 최대
중도이탈 늘어나자 편입규모 커져
정원 제한·등록금 동결 대학들은
재정난 타개 고육지책으로 활용





편입 수험생들이 2020년 12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필기시험을 치른 뒤 교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던 대학생 A 씨는 최근 편입 시험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 대학이나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보려 했지만 막상 도전하려니 최근 인기가 시들해진 데다 대학교 자퇴생이 늘면서 편입의 문이 넓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편입 시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해 학습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도 메리트였다.


A 씨처럼 많은 대학생이 편입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성적인 취업난에 있다. 과거보다 대학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을 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왕이면 상위권 대학과 기업들이 선호하는 전공으로 갈아타자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방대에서 수도권대, 지방대나 수도권대에서 서울 주요 대학, 서울 주요 대학에서 또 다른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학생들의 연쇄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대학들은 결원을 채우기 위해 앞다퉈 편입 인원을 늘리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대학가에서는 ‘자퇴생의 빈자리를 편입생으로 채운다’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정시 확대 및 통합 수능에 따른 ‘N수 증가’에 편입생도 늘어=편입 정원은 2012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편입 규모를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학 편입학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한 뒤 크게 줄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방대 기피 현상과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 등을 정책의 근거로 삼았다.


일반 편입 정원은 전년도 1·2학년 제적자 수에 ‘4대 요건 확보율’에 따른 산정 비율을 곱한 뒤 신입학 미충원 인원 중 이월 인원을 더해 결정한다. 4대 요건은 교원확보율·교지확보율·교사확보율·수익용기본재산확보율이다. 쉽게 말하면 자퇴생이 많고 4대 요건을 잘 충족할수록 편입 정원도 늘어난다.


정원이 축소되면서 인기 역시 자연스레 줄어들던 편입 시장이 최근 몇 년 새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유는 바로 ‘대입 제도’에 있다. 입시 업계는 올해 반수생 규모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달 치러진 6월 모의평가 지원자 중 졸업생 비율은 16.1%로 2011학년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N수생이 증가하면서 자퇴까지 이어질 경우 편입 정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전망이다.


N수생 증가는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중이 40%까지 확대된 영향이 크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문·이과 통합 수능이 도입되면서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상위권대 인문계열로 진학한 이과생은 물론 이들에게 밀려난 문과생 역시 입시에 재도전하려는 움직임이 재수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의대 모집 정원이 점차 늘고 약대가 신입학 선발을 시작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부터 경찰대가 편입학을 최초 시행하며 문은 더 넓어졌다.


수험생들은 편입 시험이 수능에 비해 학습 부담이 덜하다는 점에서 우회로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주로 인문계 편입 영어 1과목, 자연계는 편입 영어+편입 수학 2과목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고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상위권 대학이나 다른 전공에 도전해 새로운 취업 경로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에 허덕이는 대학들=자퇴 등 중도 이탈자가 늘어나면서 대학 입장에서도 편입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령인구 역시 가파르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편입을 통해서라도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경우 재정난이 더욱 악화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원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는 만큼 편입은 더욱 놓칠 수 없는 카드가 됐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진 대학 입장에서는 편입을 통한 충원이 중요해졌다”며 “다만 국내 편입은 지방대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이탈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양극화가 가속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2012년에 발표된 개선 방안에 따라 일반 편입 정원 산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4대 요건 확보율’ 지표를 빠른 속도로 개선하며 편입 정원을 늘리고 있다. 김병주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4대 요건이 정원 산출에 연계된 뒤로 정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대학들이 점차 교원확보율 등을 끌어올리며 정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이중·복수 전공 등 다른 제도를 통해 진로를 바꿀 수 있음에도 학교를 바꾸려는 것은 결국 아직도 대학의 서열이 중시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편입 증가는 이러한 현상과 대학들의 현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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