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중국은 올 상반기에만 114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이 공장 건설 계획을 보류하고 K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장 주도권을 찾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외신과 중국 전지망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착공한 배터리 관련 공장은 85개에 달한다. 이중 투자 규모가 공개된 81개 공장의 총 투자액은 5914억4800만위안(약 114조7468억원)이다. 분야별로 보면 배터리 생산 공장 28개의 총 투자액은 2780억7600만위안(약 53조9467억원)이며 양극재 및 원자재 공장이 16개로 1126억8400만위안, 17개가 음극재 공장으로 968억400만위안이다. 이밖에도 분리막, 전해액 등 배터리와 관련된 생산 공장이 연이어 건설을 시작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가동한 배터리 관련 공장도 23개다. 투자 규모가 공개된 21개의 총 투자액은 750억3100만위안으로 기록됐다. 6개월 사이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진행한 중국과 달리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서 지난 3월 1조7000억원을 들여 올해 2분기 중 미국 애리조나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지만 지난달 투자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 고물가·고환율 등의 여파로 투자비가 2조원대 중반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착공 연기로 2024년 하반기 양산 목표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올해 주요 기업들이 공장을 짓거나 가동을 시작했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보유한 중국과 그 규모를 비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배터리 생산 업체 중에선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와 헝가리 코마롬에서 상반기 가동을 시작했다. 공개된 투자 금액은 합쳐서 3조원 안팎이다. 이밖에 LG화학, 포스코케미칼 등이 양극재 공장 건설에 나섰다.
투자 금액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가격 경쟁력에 승부를 걸었던 중국 업체들은 기술력 향상을 앞세워 국내 기업들을 추격해오고 있다. 단순히 저가 공세에 그치지 않고 국내 업체들이 강점을 가진 고급 삼원계(NCM) 배터리, 원통형 배터리 등에도 투자해 글로벌 고객사를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테슬라,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기아, 쌍용차 등 국내 업체까지 중국 배터리를 채택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 1~5월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3사 점유율은 25.6%로 지난해 동기 대비 9% 포인트 떨어진 데 반해 CATL,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점유율은 10% 이상 확대된 것에서 이들의 매서운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도심 봉쇄 속에서도 중국은 지난 4월 전년 대비 57% 성장한 판매량을 기록했다”며 “2차전지 전방인 전기차 시장 판매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한국보다 양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원료의 중국 장악력이 절대적인 점도 국내 업체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현지에서 채굴하는 물량은 물론 남미와 아프키라 광산을 사들이며 원자재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우리나라의 배터리 소재 중국 수입 의존도도 60%가 넘는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할 경우 공급망 위기에 취약한 국내 산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진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주요 광물 가격이 4월 고점을 기록한 후 점차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이지만 향후 2차전지 업황에 있어 재료비 리스크는 단기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잡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