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언론과 야당에게서 독재자라는 의미의 ‘파시스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좌파 파시스트 집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글로벌리즘’ ‘글로벌리스트’라는 단어를 남용하며 ‘글로벌리스트’를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면 ‘자유’ ‘반지성주의’를 수차례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이런 단어의 의미해석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신간 ‘세상을 지배한 단어들(원제 The War of Words)’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등 전통적인 단어들과 함께 세계화 시대,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온 단어까지 역사적으로 오용되고 남용돼 온 단어들의 역사적 연원을 밝히고 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세계화를 연구한 해롤드 제임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 중 많은 부분은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단어들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저자가 주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은 이 시대의 정치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단어이자 사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개념들은 19세기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는 상당 부분 상실됐다. 그 뜻을 상실한 단어들의 남용과 오용은 생산적인 논쟁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지정학, 신자유주의, 테크로크라시, 글로벌리즘과 같이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사상에 동반되는 언어학적 오해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견해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생산적인 논쟁을 가능하게 하려면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단어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지식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팬데믹 이후 유행한 단어들도 분석 대상에 올랐다. 저자는 “1970년대 이후 자기 만족에 빠져들었던 여러 나라들이 세계화라는 새로운 물결에 의해 허물어졌듯이 팬데믹 이후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팬데믹과 함께 ‘세계화’라는 단어의 사용도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세계화를 위한 물리적 요소에는 제약이 많아진 반면 비물리적 요소, 즉 정보의 세계화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결국 명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는 소통만이 미래사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2만 2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