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업무 보고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원자력 발전 활용 관련 부분이다. 9월 발표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기로 해 이미 환경영향평가에 돌입한 신한울 3·4호기가 K택소노미에 따른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부문별 감축 목표도 9월까지 재설계해 내년 3월 ‘1차 국가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 계획’에 반영한다. 원전의 역할을 늘려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산업·민생 분야에 탄소 배출 여유분을 안배하는 게 핵심이다.
이날 보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전을 활용한 탄소 중립으로 규정할 수 있다.
환경부는 우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는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해 금융권의 녹색 투자를 유인하기로 했다. K택소노미 수정안은 이달까지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늦어도 다음 달 초 초안을 발표하고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9월에 확정한다는 게 환경부의 로드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원전 회귀’ 움직임이 뚜렷한 상황인데 우리도 이 흐름에 동참한다.
K택소노미에서도 EU택소노미와 마찬가지로 원전 포함 조건으로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등의 조건이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으로 보기 위한 조건으로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사용해야 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그 시점은 EU에 비해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경우에도 EU택소노미에서 ㎾h당 270g 이하의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고 못 박은 반면 K택소노미에서는 ㎾h당 340g으로 EU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의 조건을 제시했다. 특히 사고저항성핵연료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로 미국도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한 장관은 “사고저항성핵연료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등의 일정은 EU와 다른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해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 건설에 돌입한 신한울 3·4호기부터 K택소노미를 적용 받아 녹색금융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원전 도입이 미국·유럽보다 늦는 만큼 사고저항성핵연료 도입도 2035~2040년으로 늦춰야 한다”며 “이 경우 2024년 착공할 신한울 3·4호기부터 녹색금융을 지원 받을 수 있는 동시에 2031년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 개발 완료와 시점도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신한울 3·4호기 환경영향평가가 이미 시작됐다”고 언급했다. 지난주 말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개최했고 올해 하반기까지 환경평가서 초안 작성과 주민 공람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환경부는 원전의 역할을 늘린 2030 NDC 수정안을 내년 3월까지 ‘1차 국가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 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9월까지 에너지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부문별 감축 목표 조정안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계·경제계·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칠 예정이다. 에너지 자립도 강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도 추진하되 적정 비율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 결정한다. EU에서 추진하는 탄소국경세와 같은 무역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감축 효율이 높은 기업이 배출권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배출권 유상 할당 방식도 확대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광역 상수도 공급 가격은 동결하기로 했다. 현재 지자체의 광역 상수도 구입비는 총생산원가의 약 24%를 차지하고 있다. 영세한 수도 사업자에 대해서는 요금 감면 폭을 확대하고 인공지능 홍수 예보 등 첨단 기술로 물 재해 대응 체계를 완비한다는 방침이다.
4대강 보는 수질·생태·이수·치수 등 다양한 항목들을 종합적·과학적으로 분석해 기후위기에 대응해 보의 활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농번기·가뭄에는 물 이용이 필요한 만큼 수위를 유지하되 녹조가 발생했을 경우 탄력적으로 보를 개방하는 방식이다.
초미세먼지 농도를 30% 줄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서 정부 임기 내 중위권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산업 공급망과 관련해서는 반도체 산업의 생명수로 불리는 ‘초순수’ 기술을 2025년까지 국산화하고 자원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폐기되는 각종 제품에서 리튬·코발트 등 희소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