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초기…정책 신뢰 제고·고통 분담으로 복합위기 넘어야” [청론직설]

◆황윤재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
인플레 낮추려면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감내해야
일관된 금리 정책 통해 기대 인플레 악순환 차단 필요
정치지도자의 설득 리더십, 노사 임금 인상 자제 절실
블록화시대 초격차 기술·창의적 인재로 경쟁력 키워야 ?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으로 내정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가 2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책 신뢰 제고와 고통 분담을 통해 경제 위기의 태풍을 뚫고 나가야 한다"며 "정치 지도자의 일관된 메시지와 설득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경제 위기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물가와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으로 내정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로 진입했다”며 “만병의 근원인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지금은 정책 신뢰도 높이기와 고통 분담으로 경제 위기의 태풍을 뚫고 나가야 한다”면서 “정치 지도자의 일관된 메시지와 설득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년 7개월 만에 최대치인 6.0%까지 치솟았다. 물가 대책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는데.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은 만병의 근원이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경제 불확실성을 높여 경제 주체가 안정된 소비와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만든다. 더 나쁜 것은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미래 물가 상승을 예상해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지면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 현재로서는 금리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이는 투자와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도 우려되고 있다.


△이달 말 미국이 금리를 대폭 올려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급격한 자본 유출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비교적 양호한 경제 체질을 갖춰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세는 미국의 급격한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달러 강세 탓이 크다. 주요 6개국 통화와 비교해 달러 가치를 산출하는 달러인덱스는 연초 이후 약 12% 상승한 반면 원·달러 환율은 약 10.5% 오르는 데 그쳤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물론 지정학적 위기나 높은 대외 의존도를 경계해야 하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금융 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가.


△물가가 인상되고 금리가 오르면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로 봐야 한다. 성장 궤도로 복귀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정책의 신뢰도 제고와 함께 한국은행의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다.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국민의 심리를 잘 살펴가면서 적절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만약 교과서적인 정책을 동시에 남발하면 원하는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좀 더 인내해 고통을 빨리 끝내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확고한 ‘정책 리더십’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데.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려면 일정 기간 저성장·고실업 등 실물 부문의 비용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단기간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특별한 정책 수단은 없다. 국민의 고통을 빨리 끝내려면 정책 신뢰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내러티브 경제학’의 저자 로버트 실러는 정치 지도자의 표현 방법이 경제 심리를 좌우해 실제 결과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 총재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금리도 섣불리 인하한다고 말하기보다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으면 현재 기조를 유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최근 청년과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의 빚 탕감 지원 정책이 논란을 빚었는데.


△경제가 어려울 때 취약 계층 지원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정책을 발표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금융위원장이 ‘청년·서민의 투자 실패’를 언급한 것은 잘못됐다. 이는 모럴해저드 같은 불필요한 논란으로 정책 효과를 떨어뜨렸고 국민의 합의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냈다. 통화 긴축에 따른 취약 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선별적이어야 하며 공정성 및 신뢰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번 사례는 고통 분담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려면 정책 내용뿐 아니라 표현 방법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의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요구는 ‘임금발(發)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은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독과점 부문이나 공기업 등 노동조합이 강한 분야부터 자발적인 고통 분담에 나서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지금은 노사 협력을 통해 적절한 선에서 타협이 필요한 때다.


-당정은 소득세·법인세 인하 등을 위해 세제 개편에 착수했는데.


△현 시점에서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자제하고 경제 위기에 대비해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조세 수입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조세 감면 정책은 효과가 불분명하고 외려 재정 적자를 키울 우려가 크다. 포괄적인 세율 구간을 낮추는 방안은 인플레이션 해소 이후에 발표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월 말 현재 48.3%에 달한다. 현재 비율만 따져보면 주요 선진국에 비해 그리 높지 않지만 증가 속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자칫 국제 자본시장에서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받아 국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자본 유출도 급증해 국가 파산 같은 금융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건전한 재정 상태는 경제 위기 극복에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이고 경제 활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세원을 확대하고 조세 감면 범위를 조절해야 한다.


-최근 금리 인상으로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올 1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89.8%로 주요 선진국(약 63%)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주택담보대출 규모 확대와 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 수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탓이다. 이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도 주요 요인이다. 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이뤄져 소비를 크게 제약할 정도는 아니다. 고소득·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이 이뤄져 금융 시스템 자체의 안정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하다. 문제는 저소득층이나 20~30대 청년층의 부채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 취약 차주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신중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민생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피부로 느낄 만한 정부 대책이 부족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는 정부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모아 고통을 분담하자고 얘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모두 잘살게 만드는 정책은 없다. 지금은 정부를 믿고 참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리더십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조금만 더 인내하고 단합하자고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가 올바른 원칙을 세우고 굳건히 밀고 나가면 신뢰를 얻게 된다.


-재정을 효과적으로 쓴다면 어디에 투입해야 하나.


△재정을 사용하더라도 경제 위기로 직접적 타격을 받는 계층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계층을 찾아내고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필요한 분야에 한정해 재정을 지원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잠재성장률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2%선으로 추락한 것도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저출산·고령화와 인적자본 투자의 효율성 저하, 과도한 규제 등이 맞물려 빚어졌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사회 양극화 현상도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이제는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창의성을 북돋우고 대학에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허용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시장 유연화 대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최근 블록화가 가속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최근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으로 탈(脫)세계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상 시장의 중국 의존도가 높고 기술 측면에서는 미국·일본·유럽 등 서방 세계와 적극 교류하고 있다. 시장과 기술 가운데 기술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움직이는 것이 한국의 생존 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미래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독자적인 초격차 기술을 갖춰야만 경제 블록화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다만 중국 시장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실리적 차원에서 한중 관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He is…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성광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2020년 서울대 경제학부 최초로 석좌교수에 임명됐다. 서울대 경제연구소장, 한국은행 학술자문교수, 한국계량경제학회장을 지냈으며 세계계량경제학회 종신석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학회 수석부회장인데 내년부터 이 학회의 회장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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