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곤경에 빠졌소. 당신이 도와주시오.”
1993년 5월. 취임 4개월 만에 지지율이 36%까지 추락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데이비드 거건에게 전화를 걸어 ‘구원투수’를 맡아달라고 청했다. 거건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공화당 정권에서 여러 차례 백악관 공보 전문가로 일했던 베테랑이었다. 민주당 출신으로 “워싱턴 정치를 바꾸자”고 외쳤던 클린턴이 워싱턴의 공화당 계열 전문가에게 손을 내민 것은 뜻밖이었다.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한 ‘경제 대통령’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집권 초에는 비틀거리면서 온갖 허들에 걸려 넘어졌고 그때마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거건은 2000년에 쓴 책 ‘권력의 증인(Eyewitness to Power)’에서 “클린턴 정권을 거의 파국으로 치닫게 했던 씨앗은 정권 인수 기간 중 잉태됐다”면서 ‘잃어버린 11주’라고 표현했다. 그는 통치팀 창출 실패, 취임 직후 국정을 위한 정교한 계획 부재, 체력적 준비 부족 등 크게 세 가지 잘못을 꼬집었다. 당시 대통령 고문으로 임명된 거건이 제시한 처방은 ‘클린턴을 클린턴답게’였다. 클린턴은 참모진 및 백악관 운영 방식 개편과 휴가를 거치면서 재충전하고 새 출발을 했다. 그해 연말쯤 클린턴은 지지율을 58%로 끌어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근 지지율이 32%(한국갤럽)까지 떨어진 윤석열 대통령은 초반에 고전했던 클린턴과 닮은꼴이다. 두 사람 모두 인사(人事)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윤 대통령은 일부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시비, 대통령실 ‘사적 채용’ 및 ‘검찰 편중 인사’ 논란 등으로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상식 가치를 훼손시켰다. 클린턴 정부에서는 2명의 법무장관 지명자가 불법 이민자 고용 문제로 낙마했다. 정책의 큰 방향보다는 정무적 대응 미숙과 말실수, 거친 언행 등이 도마 위에 오른 것도 유사하다.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민간 주도 경제, 안보 강화, 법치 등에 방점을 찍은 총론은 긍정 평가를 받았지만 디테일과 스타일에서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참모진 인선 실패와 통치 준비 부족 등도 대동소이하다. 대통령 부인의 적극 행보가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도 공통점이다.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클린턴보다 더 나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주가 폭락, 경기 침체 등이 겹친 경제 위기 태풍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지층 양극화 심화로 중도층과 보수층 일부만 이탈해도 지지율은 바닥권으로 고꾸라진다. 여소야대 체제인데도 내홍 중인 여당은 존재감도 없다. 윤 대통령은 무리하게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도어스테핑 등을 시도해 혼선을 빚어 최우선 어젠다들을 놓쳐버렸다. 마치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수험생이 굳이 난도가 높은 시험을 선택해 치른 것과 같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30% 선에서 저지할 수 있을까. 만일 지지율이 25%쯤으로 떨어지면 국정 동력마저 상실된다. 한 전문가는 “네 사람 중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한 명에 불과하면 그 사람도 위축돼 지지 발언을 하지 않게 된다”고 비유했다. 대통령이 초반부터 ‘레임덕’을 맞는 것은 국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으려면 윤 대통령이 클린턴을 벤치마킹해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윤 대통령은 8·15 광복절 전에 휴식을 취하고 참모진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 집권 3개월여 만에 ‘광우병 파동’ 등으로 지지율이 16.9%(리얼미터)까지 추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해 지지율 반등 계기를 마련했다. 또 믿음직스러운 여당 지도부를 새로 선출해야 한다. 집안싸움만 일으키는 이준석 대표나 ‘윤핵관’ 체제로는 책임 있는 집권당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깊고 넓게 공부해서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말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낮은 자세로 쓴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취임 100일을 맞을 때쯤 ‘윤석열다움’을 찾으면서 ‘대통령다운 윤석열’로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멈추고 심기일전하고 다시 힘차게 출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