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가 수사·정보기관에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고도 가입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검찰 등 수사·정보기관, 특히 최근 논란이 됐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온 행위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셈이다.
헌재는 21일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등이 위헌이라는 4건의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은 자체는 위헌이지만 즉각 무효로 했을 때 혼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유지시킨다는 의미다.
헌재는 “통신사가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정보 주체인 이용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이용자가 통신사에 요청할 때만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 여부를 제공했지만 앞으로는 자동으로 이용자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통신자료를 영장 없이 취득하는 것 자체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봤다. 헌재는 “통신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거절해도 아무런 법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며 “이는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수사에 불과하며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헌재 판결로 수사·정보기관들이 대상자도 모르게 무차별적인 통신자료를 수집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깜깜이’로 통신자료를 제공받아왔지만 대상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 자체적인 자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여전히 영장 없이 수사기관 자체 판단만으로 통신자료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사가 수사기관 요청을 거절해도 아무런 법적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는 게 이유인데 어느 간 큰 회사가 수사기관 요청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거절하겠나”고 말했다.
이번 헌법소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이 2016년 제기했다. 헌재는 여기에 지난해 공수처가 ‘고발 사주’ 등 수사 명목으로 기자와 시민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등을 병합해 심리해왔다. 공수처는 헌재 결정에 대해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를 차단하기 위해 자체 통제 방안을 마련해 4월부터 시행 중”이라며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하면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