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에 묶인 2000만톤 풀리나…"우크라 곡물 수출협상 타결"

■흑해항로 통한 수출재개 합의
튀르키예 대통령실 "22일 서명"
우크라군 국제해역까지 운항 후
제3국 선원 이스탄불까지 운항
밀·옥수수값↓ 5개월래 최저
글로벌 식량 위기도 한숨 돌려
서방 환영 속 "합의 이행 중요"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인근에서 한 농부가 밀을 수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튀르키예(터키), 유엔이 우크라이나의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재개에 합의했다고 튀르키예 대통령실이 21일(현지 시간)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국 간의 사실상 첫 합의로, 글로벌 식량위기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당장 튀르키예의 발표 이후 밀·옥수수 등의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날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를 재가동하는 데 합의했다”고 전했다. 22일 이스탄불 돌마바흐체궁전에서 열린 합의 서명식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대표단이 참석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 따라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을 떠난 곡물 운반선은 흑해의 국제 해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크라이나군과 해안경비대 등이 운항을 담당하며 이후 제3국 선원이 선박을 이스탄불까지 운항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 튀르키예는 곡물 운송선이 오갈 때 밀반입되는 무기가 없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곡물 운반선을 통해 서방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밀반입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아울러 이스탄불에는 안전보장조정센터를 설립해 우크라이나·러시아·튀르키예·유엔이 화물선 출입 등을 공동 감시할 계획이다. BBC는 이번 합의로 러시아 역시 흑해를 통한 곡물과 비료 수출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서 글로벌 식량 가격은 급등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흑해를 봉쇄해 곡물 수출이 막혔다고 비판해왔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기뢰를 부설해 항구 진출입을 막았으며 식량위기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의 부작용으로 식량·비료 수출이 막히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반박해왔다. 이에 유엔과 튀르키예가 두 달 전부터 적극 중재에 나섰으며 네 차례의 협상을 거쳐 마침내 이날 합의에 이르렀다. BBC는 “휴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처음으로 중대한 합의를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식량위기도 한숨을 돌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오데사항에서 발이 묶여 있던 밀과 옥수수 등 2000만 톤에 달하는 곡물이 이번 합의로 시장에 풀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레바논은 전체 밀 수입의 81%, 튀니지는 49%, 이집트는 26%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왔다. 이들 국가에서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밀 수입이 줄면서 식량난과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미 정부는 전쟁에 따른 곡물 수출 차질로 17개 나라에서 시위가 일어났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22일 장중 부셸(약 27.2㎏)당 7.83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2.85% 내렸다. 올 5월 12.79달러에서 고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세를 보인 밀 가격은 이날 전쟁 발발 전인 2월 16일 이후 최저 수준에 달했다. 옥수수 선물 가격도 부셸당 5.655달러로 1.44% 떨어져 2월 3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서방은 협상 결과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을 여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애초에 이런 (수출 봉쇄)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러시아의 의도적 결정 때문이었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합의 이행이다. 우리는 러시아가 합의를 실천하도록 파트너들과 계속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곡물이 수출될 때까지는 사태를 낙관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수의 미국 관료, 업계 전문가 등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민간 화물선과 해상 보험사, 선원들은 향후 있을지도 모를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측의 공격을 우려해 업무를 맡기를 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