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K-무기' 빨리 달라는데…'승자의 저주' 우려하는 韓 속사정

[민병권의 군사이야기]폴란드 무기수출 득과 실
러시아 위협 직면한 폴란드, 한국무기에 러브콜
K2전차 180대 1차구매..최대 1000대 도입의지
K9자주포도 최대 670여문 수출 계약 조율 중
FA-50 경공격기48대 구매도 관심 나타냈지만
韓 정부·방산업계"확정안돼 아직 협상중"표정관리
계약성사시 최대 20조원 이상 성과 기대되지만
폴란드, 계약이행 구속력 없는 MOU만 내밀어

북한군이 폴란드에서 도입한 Mi-2헬리콥터가 비행하는 모습. 폴란드는 냉전시절 북한에 무기를 공급한 주요 공산국가중 한 곳이었다. /연합뉴스

지난 1984년 5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김일성(왼쪽) 북한 주석이 보이체흐 야루젤스키 폴란드 국가평의회 의장의 환대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SINONK닷컴

#냉전시절이던 지난 1982년과 1986년 폴란드는 북한과 양자협정을 맺고 군용 헬리콥터를 제작·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한다. 옛 소련이 설계하고 폴란드가 생산해온 ‘Mi-2’헬기를 만들어 북한에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북한은 Mi-2를 약 140대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군은 Mi-2헬기를 단순히 방어용이 아닌 남침용으로 보유하고 있다. 일부 수량을 공수·저격여단을 태우는 대남침투용 특수전기로 운용해왔다. 나머지 Mi-2헬기는 대전차로켓, 기관총 등을 탑재해 우리 육군 전차부대를 위협할 공격헬기 등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는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한 장비를 북한에 팔던 주요 무기 공급국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방위산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 등을 모색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약 40년이 지난 현재 폴란드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국을 지킬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해달라고 대한민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K2 흑표’전차와 ‘FA-50’경공격기 등을 대량구매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폴란드가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한층 높아진 러시아의 안보위협에 직면해 국방력 확충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자국내 주간지 시에치(Sieci)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K2 전차 180대에 대한 첫 주문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FA-50 48대 구매에 관심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곁들였다.


우리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는 2030년대까지 총 1000대의 K2를 구입하겠는 의사를 우리측 방사청 및 방산업계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의 K9 자주포, 개인용 화기, 포탄 등의 구매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K2전차 1000대, FA-50 34대, K9자주포 670여문이 폴란드에 수출되면 총 계약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설 것이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K2 흑표 전차의 시험사격 장면. 폴란드가 최대 1000대에 이르는 K2전차 도입의지를 우리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1차로 180대의 물량 구입의사를 공식화했다. /사진제공=현대로템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방사청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협상 중”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수출 물량도, 가격도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생산 및 기술이전 조건 등을 놓고 폴란드 측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계약 방식에 대해서도 양측간 조율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고 관련업계는 설명하고 있다.


이번 수출사업의 성사시 전세계 방산업계 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 이 같은 메머드급 방산 수출 계약을 놓고 우리 측은 왜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한 고위당국자는 “수출계약의 디테일(detail)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합의 도장을 찍었다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폴란드 정부측의 구매 약속만 믿고 우리 방산업계가 덜컥 생산설비 증설 등 선행투자를 단행했다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대규모로 투자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측은 현재 협상 과정의 세부사항들을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조율 중이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이 편대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 폴란드는 FA-50의 구매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제공=KAI



韓 설비증산 등 투자 리스크 문제로 신중모드


폴란드 재정적자국이지만 대외지급력은 개선중


양국 상생하도록 수출 조건, 계약 정교하게 짜야




◆양해각서(MOU)만 내밀고 무기 달라는 폴란드


우리 정부와 방산업계가 이번 폴란드 무기수출 규모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장 큰 원인은 폴란드 정부의 태도에 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폴란드는 한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정식 계약체결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신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하면서 우리 측에 빨리 무기를 공급해달라고 제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폴란드측이 자국의 장기 국방계획을 우리 측에 설명하면서 2030년대까지 전차, 전투기 등을 어느 만큼씩 도입하려 한다고 설명하면서 일단 (최종 계약에 이르기 전까지의) 중간단계로 MOU부터 맺고 보자는 식”이라며 “하지만 향후 10년간 폴란드 사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우리 측으로선 덜컥 MOU만 믿고 사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아 추가로 협상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고위당국자도 “폴란드가 구매하겠다는 전체 규모가 있지만 그중 1차분 도입물량(K2 전차 180대)만 먼저 계약을 하고 그 다음 물량은 (계약까지 이르려먼) 더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가 양자회담을 열고 있다.양측은 안보 및 방산분야 협력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제공=국방일보

우리 측이 MOU만 믿고 대량 물량 수출을 약속하기 어려운 까닭은 막대한 규모의 선행투자 리스크 때문이다. K2전차 제조사인 현대로템의 전차 생산량은 연간 수십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초 2020년까지 K2전차 390대를 도입키로 했던 정부가 공격헬기(아파치) 도입예산 확보를 위해 K2의 1~2차 양산물량을 총 206대로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후 3차 물량도 당초 기대됐던 100대의 절반 수준인 54에 그쳤다.


따라서 이와 별도로 향후 약 10년에 걸쳐 폴란드에 1000대의 전차를 만들어주려면 생선설비 증설과 인력 확충 등 대규모 선행투자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소식통은 “폴란드가 갑자기 우리 측 무기를 대량구매하겠다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가 앞으로 폴란드도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하지만 향후 수년내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종결되고 러시아와 나토(NATO)간 화해무드가 형성되면 폴란드가 약속했던 전차나 전투기, 자주포 도입물량을 많이 줄이거나 아예 취소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방산업계가가 폴란드의 MOU만 믿고 설비증설에 나섰다간 해당 주문 물량이 취소되면 경영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정은 폴란드로부터 수출 러브콜을 받고 있는 FA-50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K9 자주포 제조사 한화디펜스 등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출처: 제인스(JANES)

◆수출대금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이번 폴란드 수출 협상을 놓고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사안은 과연 폴란드 정부가 구매하겠다는 대규모 무기 대금을 지불할 여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폴란드의 경제사정을 살피지 않고 양국이 서로 과욕을 부려 무리한 방산수출을 추진하면 훗날 도리어 양국관계에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폴란드 정부는 앞으로 약 10년간 총 3차에 걸쳐 K2 전차 1000대를 구입할 수 있다는 장기계획을 우리 측에 설명하면서 그중 1차 도입물량으로 180대를 주문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해 국방비가 50조원에 이르는 우리나라도 K2 전차를 1~3차 양산 물량을 모두 합쳐 260대(1차 100대, 2차 106대, 3차 54대)에 그쳤고 4차 물량을 추가로 양산할지를 놓고 예산마련을 고심 중인데 우리보다 경제력과 국방예산이 크게 못미치는 폴란드가 과연 1000대나 K2전차를 살 수 있을지는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료제공: 수출입은행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6741억달러여서 대한민국(약 1조8239억 달러)의 3분 1을 약간 넘어선 수준이다. 국방분야 전문매체 제인스에 따르면 폴란드의 2022년도 국방예산은 145억 달러(22일 환율 기준 약 19조원)로 올해 대한민국 국방예산 54조6112억원의 약 35% 정도다. 폴란드 정부는 정부재정지출 대비 국방지출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제인스의 장기 전망치를 보면 2030년에 이르러서도 폴란드 국방예산은 200억달로 초반대 수준일 것으로 예상돼 우리의 현재 국방비 지출액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재정 적자국이다. 지난 2017년부터만 따져도 2021년까지 5년 연속으로 재정수지 적자를 냈다. 특히 2020년도에는 재정적자폭이 GDP 대비 7.1%에 달했다. 이듬해에는 적자 폭이 GDP 대비 2.5%로 줄었으나 올해 다시 악화대 4.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올해 5월 한국수출입은행의 국가신용도 리포트에 담긴 분석이다. EU는 아직 재정자립도가 충분치 못해 유럽연합(EU)의 재정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EU가 지난 2014~2020년 동안 집행한 총예산지출은 누적 9006억3812만 유로다. 그중 무려 11.6%(1041억5969만 유로)가 폴란드에 지원됐다. 이로 인해 폴란드는 해당 기간중 28개 EU회원국중 가장 많은 EU예산을 수령한 나라로 기록됐을 정도다.



자료제공: 수출입은행

경상수지는 대외환경 등의 영향에 따라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취약한 구조다. 2017~2018년에는 연속 적자를 냈다가 이후 2년간 흑자 전환했으나 2021년 다시 38억9500만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올해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수출 위축, 에너지비용 상승에 따른 수입액 증가 등으로 무역적자가 발생해 경상수지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만 아직 취약한 재정·경상수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대외지급능력은 상대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GDP는 꾸준히 상승하는 가운데 외채규모는 줄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증가세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GDP 대비 총외채 비율은 지난 2017년 72.7%나 됐으나 2021년에는 52.9%까지 개선됐다. 외환보유액은 같은 기간 34.4% 증가해 지난해 1451억5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따라서 폴란드가 당장 MOU 및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K2 전차 1차 수출물량 등의 대금 지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추가적인 대규모 물량 계약은 향후 폴란드 정부의 경제여건과 우리 수출기업의 투자여력 등을 정밀하게 살펴 서로에게 상생이 되는 방향으로 일정과 조건, 물량 등을 정교하게 조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디펜스가 제조한 국산 명품 무기 'K9 자주포'의 모습. 높은 성능과 품질, 합리적 가격의 장점을 고루 갖춰 폴란드 등이 구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제공=한화디펜스

◆'죽음의 상인' 아닌 ‘자유의 투사’로…방산정책 철학부터 세워야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 물자의 대부분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원 받아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72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방기술 국산화를 통해 오늘날 방위산업 선진국의 문턱을 밟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사회에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다. 안보위기에 직면한 동맹·우방국들이 국방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최적의 국방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가별 맞춤 방산수출프로그램을 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방사청과 방산업계가 단순히 수출 대상국의 안보여건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요 경제지표들을 두루 살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국가별 방산 수출패키지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K2 흑표 전차의 주행 장면/사진제공=현대로템

또한 단순히 국제안보 불안에 편승해 무기를 많이 팔겠다는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타국의 전쟁으로 자국의 배를 불리려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을 쓸 수 있다. 그보다는 세계 평화와 국제 질서에 기여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가성비 좋은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고, 사후 무기운영 및 점검까지 전주기로 책임진다는 철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에 대해선 ‘공격형’보다는 ‘방어형’위주로 수출용 무기의 재원을 조정·개량해 판매한다면 수출국과와 적대하는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대한민국이 압박을 받게 되는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 공군 F-4 및 F-5 전투기 편대비행 장면. 대한민국은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미국으로부터 F-5 등을 공급 받아 영공을 지킬 수 있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고성능의 전투기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위산업 기반을 갖춰 해외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미국은 냉전기였던 1960년대 ‘F-5 전투기 프리덤파이터’를 개발했고 이를 대한민국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 및 우방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염가에 판매했다. F-5는 프리덤파이터(자유의 투사)라는 별칭에 걸맞게 자유민주주의진영의 영공을 수호하는 활약을 했다. 당시 미국은 비싼 고성능전투기인 ‘F-4’를 구입할 여력이 없었던 국가들에게 F-5처럼 가성비 좋은 전투기를 공급해 우방과 동맹들을 지원했다. 대한민국도 국내용 고성능 무기 개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가성비 좋은 수출형 ‘한국판 프리덤파이터’ 무기들을 개발하고 동맹·우방들에게 공급함으로써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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