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대출 연체자의 압류 계좌에 들어온 돈을 인출할 때 압류 액수 한도에서만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동채권(상계를 당하는 자의 채권)이 제3자에 의해 압류된 경우 피압류 채권액 범위에서만 상계가 가능하다는 첫 대법원 판시여서 앞으로 유사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중소기업 A사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은행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2017년 11월 실수로 B씨 명의의 은행 계좌에 1억60여만원을 송금했다. 업체는 곧장 은행에 착오 송금 사실을 알리는 한편 B씨에게 반환을 요청했고, B씨도 돈을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B씨는 이 은행에 대출금 2억1000여만원이 연체돼 있었고, 계좌는 1400만원 세금 체납으로 과세 당국에 압류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A사의 잘못으로 1억여원이 송금되자 신한은행은 이듬해 1월 B씨의 계좌에서 대출금 중 일부인 1억500만원 가량을 빼갔다. A사는 신한은행이 상계권을 남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사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은행이 B씨의 대출 원리금 2억1000여만원에 대한 채권을 갖고 있으므로 계좌에 있던 돈을 상계(채권과 채무를 대등액으로 소멸시키는 것)하는 건 문제없다는 취지였다. 계좌가 제3자(이번 사건에서는 과세당국)에 의해 압류된 경우 상계가 허용된다는 기존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A사의 손을 들었다. B씨에게 대출해준 은행이 대출금 상계를 할 수는 있지만 계좌가 압류된 부분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수취인(B씨)의 계좌에 착오로 입금된 예금이 이미 제3자에 의해 압류됐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 수취 은행이 대출 채권 등을 예금과 상계하는 것이 허용되더라도 이는 피압류채권액(1400만원)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그 범위를 벗어나는 상계는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압류채권액을 심리해 상계가 허용되는 범위를 판단했어야 함에도 은행의 상계 항변을 모두 인정했다"며 "상계가 허용되는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