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는 2009년 아주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린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10억 달러 규모의 특허 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긴 법정 다툼 끝에 배상금 2억 달러로 합의했다. 문제는 TSMC가 현금 대신 SMIC의 지분을 2억 달러만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SMIC 창업자까지 회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위기에 처한 SMIC는 중국 국부펀드의 투자를 유치해 사실상 중국 국유기업으로 탈바꿈했다.
SMIC는 2000년 ‘중국 반도체 대부’로 불리는 리처드 장(74)이 세운 반도체 회사다. 중국 난징 태생으로 대만에서 자란 리처드 장은 미국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가량 근무했지만 SMIC 창업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중국을 위한 길을 걸었다. ‘중국의 칩(中芯)’이라는 뜻의 SMIC의 중국 이름에서 보듯 경영철학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맞물려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노골적인 편들기와 관치 금융에 힘입어 공격적 투자 유치에 나선 SMIC는 승승장구했다. 2021년 기준으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 5.3%를 점유하며 ‘글로벌 톱5’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제조(中?制造) 2025’를 표방한 중국 정부의 힘이 컸다. 2022년 3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39.3%나 증가해 SMIC의 ‘폭풍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마지막 퍼즐’ SMIC가 최근 상하이에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는 데 89억 달러(약 11조 7000억 원)를 투자한다고 한다. 2025년까지 자체 생산 반도체 비중을 3분의 2로 확대한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 목표에 충실한 행보다. 최첨단 공정과 동시에 구형 칩 생산 능력에 집중함으로써 미국의 중국 견제를 무력화시키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의 3나노 반도체 양산으로 ‘한계를 넘은 혁신’을 또 보여줬다. 맹추격해오는 중국의 도전을 이겨낼 방법은 역시 초격차 기술력을 더 확고히 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