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에도 '헤지' 외면…국민연금 '기계적 해외투자'에 수익률마저 뚝

[고환율 기름 붓는 국민연금]
◆해외투자發 '달러 매수' 봇물
환전증가액 1년만에 4배나 폭증
글로벌 투자 자산만 급격히 늘려
수장 공백사태에 책임회피 만연
고환율시대 '기존 환노출' 고수
"리스크 큰 선택…수익률도 우려"



국민연금은 2007년 이전만 해도 해외투자 자금을 모두 환 헤지했다. 투자 금액에 비례한 엄청난 규모의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환율 리스크를 피하려다 피해를 떠안는 셈이었다. 제대로 된 외환 전략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게 된다. 그 결과 환 헤지와 관련한 의무적인 규정을 없앴다. 실제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해외 채권까지 환 헤지 비율을 단계적으로 낮춰왔고 2018년 이후에는 모든 해외 자산에 환 헤지를 하지 않고 있다. 장기 투자를 할 때는 환율 리스크에 노출하는 게 오히려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본 것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이달 초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2010~2021년 환 헤지 효과를 검토한 결과 2030년 초까지 현행 환 노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한 상태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에 있다. 당장 국민연금의 환 헤지 외면은 향후 수익률 악화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웃돌고 있는 판에 환 헤지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이후 환율이 1400원·1500원까지 오른다고 가정할 때나 유효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환율 수준에서 국민연금이 전혀 환 헤지 없이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큰 선택"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거시경제 여건도 현재의 환 헤지 전략을 수립할 당시와는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 전쟁이 발생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이제는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 가치 약세를 막는 역(逆)환율 전쟁이 한창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5월 기준 32개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6000억 달러 넘게 줄었다. 우리나라도 환율 변동성 방어 과정에서 올해만 외환보유액이 230억 달러 넘게 감소했다.







해외투자 자산 늘리기에 급급한 국민연금 때문에 환율 상승세가 빨라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연금 자산이 매년 100조 원씩 늘고 있고 고수익을 내기 위해 해외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기계적인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시장에서는 지난해 해외투자를 위해 280억 달러어치를 환전했던 국민연금이 올해는 320억 달러를 환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전 연도 환전 증가액(10억 달러)보다 무려 4배나 많다. 국민연금의 도식적인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급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27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한미 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자금 운용이 탄력적으로 집행돼야 하는 시점에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수익률 관점에서도 국민연금의 스탠스는 우려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호 국제금융센터 외환분석부장은 “환율이 낮을 때는 당국이 개입하기 전에 국민연금이 달러 수요를 만들어서 해외로 나가는 효과가 있었지만 환율이 높은데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하지 않고 직접 현물환을 사면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에서 책임질 일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점도 문제다. 대선 직후인 4월 김용진 이사장이 중도 사퇴한 뒤 후임 이사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으면서 국민연금공단 수장 공백 사태는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임명되는 자리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복지부 장관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공단 이사장 인선 작업까지 지연되고 있다.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도 10월이면 4년 임기를 모두 마치고 물러난다.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의 이탈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관련 책임자가 형사 처벌받은 전례도 직원들의 복지부동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단의 최고 수장들이 정치권 입김에 휘말렸다가 구속되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는데 어느 직원이 책임지려는 일을 하겠느냐”며 “게다가 수장 공백까지 길어지고 있으니 다들 기계적으로 주어진 업무만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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