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폭로하면 '꼴페미'라 공격"…인하대에 붙은 대자보

"평등하고 존엄한 학교 만들자"

26일 인하대 캠퍼스 내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 3장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성폭행 추락사' 사건이 발생한 인하대에 성폭력 문제를 외면하고 성차별적인 목소리를 내던 학내 구성원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26일 '익명의 인하대 학생 A'씨는 인하대 캠퍼스 내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 3장을 트위터에 올리며 "학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성 구성원들은 성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는 공격에 숨죽여야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학교에서 당신은 어떤 크기로 말했냐”고 물은 뒤 "이 학교엔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과 '숨죽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공연하게 떠드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성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며 입결이 걱정된다고 떠드는 반면, 폭력이 걱정돼 불쾌한 상황에도 친절하게 살아야 하는 여성, 학내 성폭력 사건과 성차별적 문화를 지적하면 '꼴페미', '메갈'로 공격을 당할까 봐 자기를 검열하는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는 갑자기 상관없는 문제 때문에 잠재적인 가해자로 불려서 혹은 입결과 학벌이 떨어져서 '남성'이자 '대학생'으로서의 위신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와중에 다른 누군가는 폭력과 수치의 위협이 걱정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자신과 동료 시민의 안녕을 걱정한다"고 적었다.



지난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인하대에서 이 같은 성폭력 사건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A씨는 "남성 의대생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여학우들을 성희롱했을 때, 남성 총학생회장 후보가 한 여성 학우를 스토킹했을 때, 한 남학생이 여학생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을 때, 교내 커뮤니티에 여성을 조롱하고 헐뜯는 게시물들이 올라올 때도 일부 사람들은 '성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 '섣부른 일반화하지 말라',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 '우리 학교 입결은 그래도 괜찮다' 등 자기 체면을 걱정하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별과 지위에 따라 구분되는 현실을 보지 않고 ‘자랑스러운 인하대’의 역사, 명예, 입결, 아웃풋 따위를 논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A씨는 "이제 숨죽여 말하던 이들이 공공연하게 말해야 할 때"라며 "함께 평등하고 존엄한 학교를 만들자. 이 외침에 대자보로, 포스트잇으로, 댓글로, 행동으로 응답해달라"고 호소했다.



인하대 캠퍼스 내에서 동급생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건물에서 추락시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1학년 남학생 A(20)씨가 지난 22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미추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새벽 인하대 캠퍼스 내 한 단과대학 5층에서 1학년 여학생이 동급생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남학생은 준강간치사 등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다.


최근 몇 년간 인하대에선 성폭력 관련 사고가 잇따랐다. 2019년에는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으로 입후보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온라인상에서 스토킹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2016년에는 15·16학번 의예과 남학생 11명이 술자리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2013년에는 교내에서 한 남성이 여학생들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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