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尹 대통령의 착각

■김영기 논설위원
연금·노동·교육 등 개혁 외치지만
말 몇마디, 정책 몇개론 실현 안돼
이익따라 움직이는 경제도 마찬가지
5년뒤 정권 내준다는 각오로 임해야
국민 공감 이끌고 지지율 되찾을 것


‘경제’만 본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 중 도드라진 부분은 ‘과학기술’에 대한 외침이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빠른 성장’을 역설했고 무기로 ‘과학기술·혁신’을 꼽았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또 하나는 ‘구조 개혁’이다. 취임 일주일 후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은 박수는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얘기할 때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말 한마디면 관료들이 밤을 세워 과학기술과 개혁의 액션 플랜을 만들고, ‘친윤(親尹)’ 의원들이 척척 입법으로 뒷받침해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친정 식구(검찰)들을 정부 요직에 배치해 놓았으니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지방선거 압승 후 그의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지지율 30%. 윤 대통령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범한 척 하는 수사(修辭)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인사 난맥, 검찰 공화국, 실언, 참모와 여당의 능력 부재, 부인 문제까지, 원인 분석에 대해서는 거의 외웠을 법하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수긍할까. 내심 “여보세요” 외치며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억울한 것도 있다. 경제 부분은 특히 그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세계적 현상이고 전임 정부의 ‘바보 같은 짓(탈원전 관련 발언)’ 때문에 경제난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취임하자마자 숨겨진(?) 세수를 찾아 50조 원 지원 공약을 지키는 ‘초능력’도 발휘했다. 늦었지만, 비상경제회의를 계속 열고 있는데 “위기에 정부가 안 보인다”고 하니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짜증이 날지 모른다.


이런 상황을 (일부) 이해한다 해도, 윤 대통령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경제는 (검찰) 수사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세금으로 범벅 된 전임 정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겠다며 ‘민간 주도 경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는 대통령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장은 영악하다 못해 간교하다. 수사를 잘하면 범인이 자백하듯 정부가 당근을 주면 투자와 소비가 곧바로 살아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익이 안 되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1000조 원 투자를 내걸었던 기업들이 ‘R(경기 침체)’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꼬리를 내리는 게 시장 생리다.


그나마 투자와 소비는 언젠가 하게 되지만 구조 개혁은 차원이 다르다. ‘말로 하는 개혁’은 쉽지만 ‘실행하는 진짜 개혁’은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일자리 보고(寶庫)라는 서비스업발전법이 10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는 것에 비판이 쏟아져도 배지를 단 의원들은 꿈쩍도 안 한다. 역대 대통령마다 거친 화법으로 다그치는데도 정권이 끝나면 외려 규제가 늘어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 바람대로 ‘스타 장관’이 나와도 규제를 밥그릇이자 힘으로 생각하는 관료들에게 장관의 지시는 흘러가는 유행가일 뿐이다. 한 세대의 희생을 담보하기에 잘 해도 욕먹는 게 연금 개혁인데 정치 생명을 걸고 총대를 멜 사람은 많지 않다. 대우조선 하청업체 파업은 어영부영 해결했지만 노동 개혁을 제대로 해보려는 순간 강성 노조들은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국민은 어떤가.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응원할 것 같지만 조금만 시끄러워지면 등을 돌리는 게 민심이다. ‘개혁을 하되, 잡음 없이 통쾌하게 잘 하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


말 몇 마디, 정책 몇 개로 혁신과 구조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치열하지 않은 개혁은 위선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공기업 사장 몇 명 자르고 공청회 몇 번 해 놓고 개혁했다고 치장할 요량이면 시작 자체를 하지 않는 게 낫다. 대통령이 귀족 노조와 몸으로 부딪히고 과학기술인들과 미래를 놓고 밤샘 토론을 해도 민심은 살짝 눈길을 줄 뿐이다. 5년 뒤 정권을 내준다는 각오로 진심을 다할 때 국민은 구조 개혁의 필요성에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지지율을 되찾는 길도 여기에 있다. ‘골든타임 80일’은 지나갔다. 이제 힘을 갖고 일할 시간은 1년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텔레그램 메시지 소동’이라는 또 다른 화마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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