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조 뒤흔드는 中企 인력난…인재 파이프라인 만들어라

[팍스테크니카, 인재에 달렸다]
<2> '한국판 만인계획' 세워라-'인맥경화' 시달리는 중기
대기업·공기업 등 블랙홀처럼 흡수
충원은커녕 인력 지키기도 어려워
우수 중소기업도 60%가 구인난
中企경력자 가산점 전향적 대책에
기술개발·세제지원 확대도 필요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 기계과 학생들이 국가기술자격 실기 시험을 앞두고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소도시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 A 사는 올 초 신규 채용을 위해 구인 공고를 올렸지만 지금까지 아직 단 한 번의 면접도 진행하지 못했다. 제품을 개발하려면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 절실한데 지원자가 없으니 면접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A 사의 대표는 “연구 인력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 운영이 힘들어지고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매일같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중소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양질의 인재를 채용할 기회가 처음부터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만성적인 인력난은 기업 수준이나 규모에 관계 없이 우리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힌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은 ‘우수 중소기업’ 10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인력 상황에 대해 ‘부족하다’고 답변한 기업은 절반 이상인 57.0%를 차지했다. 반면 ‘여유롭다’고 답한 곳은 4.5%에 불과했다. 대기업이 아니라면 경영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실무형 인재 채용이 쉽지 않은 것이다.


중소·중견기업 대표들은 공룡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현실이 채용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용인시 소재 제조업체 대표 B 씨는 “정보기술(IT) 플랫폼 업체들이 더 많은 연봉을 주고 블랙홀처럼 인력 수요를 빨아들이다 보니 일반 중소기업은 인재 충원은 고사하고 기존 연구개발(R&D) 인력을 지키기조차도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 C 씨도 “구직자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활발한 채용을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석·박사급은 차치하더라도 바이오 업체의 생산 라인에서 일할 전문대와 마이스터고 출신 생산직도 크게 부족하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동안 어마어마하게 증설한 데다 최근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도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인력난이 더욱 심해졌다”면서 “여기에 앞으로 롯데바이오로직스도 국내에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을 세울 텐데 그때는 정말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력 부족 현상의 대표적인 해결책으로 현장 경영진과 전문가들은 정부의 세제 지원과 병역 특례 제도 확대를 꼽는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총 인건비를 늘렸을 경우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혁신 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는 병역 특례 기준을 확대해 인력 수급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과 중소기업이 손잡고 부족한 R&D 인력을 충원한 사례도 있다. 성남산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는 “핵심 인력이 납기일을 두 달 남기고 이탈하면서 수주에 구멍이 날 뻔했지만 충북대 교수진과 함께 제품 개발에 착수해 기한 내에 무사히 납품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여의시스템은 이후 충북대와 산학 협력 계약을 체결해 양질의 개발 인력을 공급 받으며 급격히 늘어나는 수주액 상승분을 감당해내고 있다.


중소기업 경력자의 공기업 채용을 장려해달라는 목소리도 높다. 송공석 와토스 회장은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다년간의 조직 생활과 회사 업무에 단련된 인재들”이라며 “석사 학위 정도의 수준을 맞춰줘서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사람을 뽑을 때 중소기업 경력이 있는 지원자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입장에서는 기초 교육 비용을 투자할 필요 없이 숙련된 인력을 채용할 수 있고 중소기업도 향후 공기업으로의 이직을 원하는 인력을 먼저 수급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기술 개발 지원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번 없이 1397로 전화만 하면 3일 내로 정부출연연구소와의 기술 협력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공감 원스톱 지원센터’ 서비스를 이용해본 한 중소기업 대표는 “세 번 정도 개발 인력을 요청해봤지만 양질의 인력은 연구소 내부의 국책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모아 중소기업에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 현황을 분석해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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