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1위로 성장한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본격적으로 해외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나섰다. 그동안 내수에만 기댄 ‘안방 호랑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세계시장을 적극 공략하며 글로벌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K배터리’ 3사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됐다.

1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CATL은 최근 멕시코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기 위해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다. 공장 후보지로는 미국 텍사스 접경 지역인 멕시코 치와와주의 시우다드후아레스와 코아우일라주 살티요 등 두 곳이 거론된다. CATL은 50억 달러(약 6조 5800억 원)를 투입해 테슬라와 포드 등에 공급할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후보지 중 한 곳인 시우다드후아레스는 치와와주, 미국 뉴멕시코주 간 국경검문소와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CATL의 주요 고객사인 테슬라 공장이 위치한 텍사스주는 국경에서 영업용 차량 단속이 강화돼 배송·통관 지연이 우려된다. 반면 시우다드후아레스의 경우 텍사스 국경을 통하지 않고 뉴멕시코주로 우회해 테슬라 공장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CATL은 앞서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미국의 대(對)중 제재가 강화되고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한국 업체들이 연이어 현지 공장 건설을 확정지으면서 불가피하게 차선책을 찾아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CATL이 멕시코에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은 점유율 34%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판매하는 제품의 상당수가 자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내수용으로 ‘완벽한 1위’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늘 뒤따랐다.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북미 지역의 4배가 넘는다.

하지만 내수 의존도가 높았던 CATL이 해외 생산 거점을 마련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CATL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해외에서 생산해 공급 물량을 늘리면 한국 업체들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K와 합작법인을 세운 포드가 CATL과 북미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현지에서 대량의 LFP 생산 설비를 운영할 가능성도 크다.

CATL은 이미 첫 해외 공장인 독일 튀링겐주 공장의 연내 상업 가동도 앞두고 있다. 연산 8GWh 수준으로 최근 시운전을 허가 받았다. CATL은 연 14GWh 규모로 증설을 통해 2025년까지 100GWh 규모로 확대하며 BMW·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기술적으로도 한국을 많이 추격해오는데 인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해외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와의 접점도 늘리고 있다. 글로벌 8위 배터리 업체인 궈쉬안은 최근 미국 완성차 업체와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합작사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궈쉬안은 지난해 독일 보쉬의 배터리 공장을 인수하고 폭스바겐그룹과 독일 배터리 셀 공장 건설을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 엔비전AESC는 르노와 프랑스에 30GWh 규모의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메르세데스벤츠와 미국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