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중도 표용 속도내는 민주당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맨친 설득 성공…기후대응법 합의
바이든의 중도정치 하나 둘 결실
초당파적 협력 이어갈 수 있다면
美 절반 끌어안는 '빅텐트' 가능


당파적 소음과 전문가들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유세를 통해 밝힌 한 가지 공약을 지켜내고 있다. 당시 그는 중도적 입장에서 국정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공약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계속 쌓여 가고 있다. 7월 27일 상원 다수당 대표인 척 슈머와 조 맨친 상원의원 사이에 합의된 절충안이 통과된다면 기후변화와 관련한 사상 최대 규모의 연방정부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 10년 내 가장 큰 규모의 예산 삭감 패키지 역시 의회의 높은 문턱을 넘게 된다.


이번 합의는 기초과학 및 첨단 전략산업 지원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데 이어 나왔다. 반도체지원법에 앞서 양당은 한 세대만의 첫 총기규제법을 합작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1조 달러 규모의 기반 시설 법안을 승인했다.


중도주의에 입각한 통치는 당과 언론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양당은 사회보장제를 구하기 위한 대규모 지출안에 합의했고 세제개혁안과 장애인 지원 법안 및 대기오염 축소안 처리에도 힘을 모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법안 입안자들은 미디어와 소속 정당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반면 오늘날 의회는 합의보다 거부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이민 개혁을 위한 초당적 노력은 2000년 초반에 멈춰 섰다. 드림법(Dream Act)은 상반된 이념을 지닌 에드워드 케네디(민주당)와 오린 해치(공화당) 상원의원의 지지로 법제화됐다. 둘은 완전히 다른 정치 이념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변화한 시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그 분기점에 뉴트 깅그리치가 서 있다. 1990년대의 깅그리치 혁명은 공화당을 변질시킨 데 이어 워싱턴 정치판까지 바꿔 놓았다. 당시 절충은 변절, 혹은 반역 행위로 간주됐다.


구통치 모델의 회복을 시도하는 바이든은 거센 조류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 만약 더 많은 양당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여기에 손을 보탠 의원들이 초당파적 협력을 했다는 이유로 당 차원의 징계를 받지 않는다면 현재 워싱턴 정가에 만연한 독성을 중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빅텐트 정당이 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 2020년 브루킹스연구소는 민주당 지지층보다 더 온건한 중도주의 성향의 교외 지역 유권자들이 바이든의 승리를 견인했다는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뒤집기의 여파로 공화당에 호의적이던 기류도 방향을 틀고 있다.


3억 3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거느린 다양하고 거대한 국가에서 빅텐트 정당은 미국의 과반수를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까지 나온 민주당의 성과는 모두 이 같은 포용의 정신에서 나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민권법 처리를 연기했다. 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의 법제화를 위해 남부의 인종분리주의자들을 끌어안았다. 빌 클린턴은 거의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서 공화당을 보듬어가며 국정을 이끌었다.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이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후 동성 결혼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뒷전으로 밀어 놓은 채 전국민의료보장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때때로 절충은 더 나은 결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이민 법안은 양당 중 어느 한쪽이 독립적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초당적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양당 모두 이 문제에 관한 적법한 우려와 정당한 주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맨친의 주장 가운데 일부는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예컨대 예산안에 숱한 장단기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쑤셔 넣기보다 프로그램마다 1년 단위로 예산을 배정하고 필요에 따라 연장하자는 주장이 그렇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충분한 그린 테크놀로지가 확보될 때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분히 출신 주인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 노동자들을 의식한 발언처럼 들리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읽은 것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맨친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4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압승을 거뒀던 웨스트버지니아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그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그를 일종의 리트머스 테스트라고 생각하자. 민주당이 계속 맨친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미국인의 과반을 끌어안을 수 있는 빅텐트를 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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