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숭례문은 화재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때 왜 망연자실했을까. 하나의 건축물 이전에 우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 속에서 질서와 규범·가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문화와 역사는 국민과 사회를 통합하는 틀이다. 그래서 6·25 전후 먹고살기 어렵던 때, 개발도상국 시절에도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구호 아래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선진국, 경제 대국이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은 문화재, 국보·보물에 대한 의미와 인식도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지금껏 상속한 국보·보물은 매각 시 상속세가 면제됐다. 그런데 개편안은 상속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법인세 인하 등 ‘조세 감면’이 주를 이루는 세제개편에 유독 국보·보물만 상속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 물을 타려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문화 예술, 문화재는 살 만해졌으니 필요 없다는 것일까. 외국 원조에 의존할 때도 면제해온 국보·보물의 상속세를 왜 지금 부과하려 할까. 수십 년 만에 처음 나온 미꾸라지를 잡으려는 기획재정부의 의지는 모르는 바 아니나 이렇게 국보·보물을 거칠게, 단순히 상품처럼 대해야 할까. 이 결정이 향후 문화재, 국보·보물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에 미칠 파장은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 상속세보다 국보·보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국보·보물은 재화·재물의 가치보다 더 중한 역사를 증거 하는 물질의 총합이다. 이런 물신주의, 배금주의적 시각은 단순히 천박한 역사 인식에서 나왔을까. 아니면 세수 축소에 대한 고육책일까. 미술품 양도소득에 대한 기타소득세도 세수가 미미해 미술 동네 형편만 어렵게 했는데 이번 세제개편은 그간 국가를 대신해 국보·보물을 소장하고 지켜온 이들을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보 351건, 보물 총 2664건을 지정하고 있다. 이 중 민간이 소장한 국보는 166건(47.2%), 보물은 1433건(53.7%)이다. 절반을 민간이 수장·관리하고 있다. 문화재 보호는 국가의 의무일 터, 이를 대신하는 민간에 장려와 지원은 못 할망정 양도 시 상속세 부과라니. 상속 후 10~15년 이상 경과 시 면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소장가와 문화재 업계만 위축시킬 뿐 세금이 얼마나 더 걷힐지는 모르겠다. 되레 문화재 시장을 지원·활성화해 사업소득세를 더 거둬들일 방법을 구상해보면 어떨까.
관련 기관·단체와 공청회·토론회·간담회조차 없이 결정된 이 조치는 분명 잘못됐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이런 몰상식을 지적하는 국회의원·언론이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리와 드라마 속 팽나무에는 민첩하게 숟가락을 얹었던 문화재청도, 문화재위원이나 노조도 입을 닫았다. 청장은 취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입을 닫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장의 시대’를 지나 ‘성숙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성숙한 대한민국을 위해 태워 먹고 후회하지 말고 뭣이 중하고 먼저인지 곰곰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