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선 후보 당시 ‘탈모약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 시행을 위해서는 1000억 원 정도의 건보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암 치료제 등 다른 필수 의료에 재정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반발에 이 후보 측은 “탈모 지원의 대상이나 범위 등을 엄밀히 선정하면 재정 투여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내놓았다. 이 후보는 아동·청소년 중증 아토피 치료제, 노년층 치아 임플란트에 대해서도 건보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건보 보장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은 비단 이 후보만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난청 환자의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삽입하는 인공와우 수술의 건보 적용을 기존 1회에서 3회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이 건보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이미 건보 재정은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지만 선거 때마다 보장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벼랑 코앞까지 왔다. 건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강력한 재정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무분별한 ‘선심성 공약’이 건보 재정을 파탄 낼 수 있음을 문재인 정부가 이미 가감 없이 보여줬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촬영비와 대형 병원 2~3인실 입원비 지원 확대 등으로 건보 지원 대상을 확대한 ‘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건보 재정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내리 적자를 냈다. 비록 지난해 2조 8229억 원가량의 흑자를 올렸지만 이는 재정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시설 이용이 줄어들어 발생한 일시적 현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계획 등으로 적자 추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건보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적립금이 모두 소진되고 2030년에는 적자가 13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보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국가 재정 계획에는 이 같은 상황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건보 재정은 기금이 아니어서 국가 재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기금으로 운용되는 다른 사회보험은 중장기 기금재정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기획재정부가 해당 내용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시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건보 지출예산 규모가 79조 원으로 정부 총지출예산(558조 원)의 13.9%에 이르지만 재정운용계획에는 정부지원금 등만 포함돼 국가 총지출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보건·복지 분야 지출 역시 과소평가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60조 1000억여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예산이 국가 재정에서 제외됐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눈에 띄게 건보 재정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다. 건보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려면 결국 보험료를 올리고 보장 범위를 축소해야 하지만 이 경우 국민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탓이다.
정부의 건보 재정 지원 조항도 정치권의 ‘눈치 보기’ 속에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왔다. 급격히 악화하던 건보 재정을 이유로 2007년 정부의 재정 지원이 시작됐지만 건보 재정이 안정을 되찾고 흑자를 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2016년 12월 31일 만료 예정이었던 일몰 조항을 1년간 한시적으로 연장했다. 이후에도 일몰이 다가오자 올해 말까지 다시 5년을 늦췄다. 3번째로 찾아온 일몰도 조항 삭제를 통한 ‘영구 지원’ 확정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몰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건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강도 높은 지출 구조 조정을 진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실효성이 없거나 재정만 악화시키는 보장 내용에 대해서는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며 “비대해진 건보 지출은 그대로 미래 세대 부담으로 전가되는 만큼 대책 없는 보장 확대는 막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건보의 보장 범위가 계속해서 확대되면서 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건보 재정이 새어 나가는 부분에 대해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