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불황 예감?'…IPO시장 줄줄이 떠나는 대어들

오일뱅크 이어 CJ올리브영 상장 작업 중단
불확실성 심화에 WCP는 9월로 일정 연기
공모주 펀드에선 올 해 1조6000억 순유출
대형 증권사 IPO 수수료 수익도 급감 추세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 사진제공=한국거래소

기업공개(IPO) 시장 대어로 꼽혔던 기대주들이 증시 침체 속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상장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오일뱅크가 IPO를 포기한 데 이어 최근에는 4조 원 수준의 몸값이 거론되던 CJ(001040)올리브영마저 상장 작업을 중단했다. 투자 업계에선 당분간 IPO 시장 침체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은 최근 내부적으로 상장 작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주주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CJ올리브영은 지난 4월 그룹 내부에서 IPO 추진안을 최종 확정한 바 있어 연내 상장을 마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것)을 단행하는 등 증시 분위기가 호전될 기미가 없자 상장을 내년 이후로 연기하게 됐다.


최근 대기업이 IPO를 취소한 것은 CJ올리브영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현대오일뱅크가 돌연 공모 절차를 취소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올 해 고유가 기조에 힘입어 10조 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무난히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지난 6월 30달러도 웃돌았던 싱가포르 정제마진이 한 달 사이 3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등 산업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자 상장을 취소하게 됐다. SK쉴더스·원스토어·현대엔지니어링 등도 올해 상반기 일찌감치 IPO를 중단했다.


대기업들이 상장 일정을 줄줄이 연기하는 것은 최근 자본시장 내 투자 심리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부진→기대 몸값 감소→공모 규모 축소’로 인해 IPO를 통한 자본 조달 효과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CJ올리브영처럼 지배구조 개편 등을 위해 구주 매출을 계획했던 기업들의 경우 IPO를 추진할 동력이 한층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업계에선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지분율 11.04%)와 장녀인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4.21%) 등이 상장 과정에서 CJ올리브영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뒤 지주사인 CJ의 지분을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공모 일정을 늦추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2차전지 분리막 2위 제조업체인 더블유씨피(WCP)가 공모 시기를 8월 초에서 9월 중순으로 한 달 반가량 미루기도 했다. 회사측은 “호조를 보인 2분기 실적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선 악화되는 거시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IPO 시장에서 대어들이 사라지고, 투자자 입장에선 먹을 것이 별로 없게 돼 공모주 투자 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해 들어 국내 공모주 펀드 설정액은 1조 5938억 원 감소했다. 증권사들이 IPO 주관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 역시 감소하고 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006800)의 올 해 상반기 IPO 수수료 수익은 전년 동기보다 71% 감소한 65억 원에 그쳤다. 삼성증권(016360)(-72%)과 NH투자증권(005940)(-34%), 한국투자증권(-25%)도 IPO 수수료 수익이 1년 사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다만 올해 1월 사상 최대 공모주였던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상장 주관을 맡았던 KB증권만이 IPO 수수료 수익이 32억 원에서 215억 원으로 급증해 IPO 주관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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