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 세입자가 떼인 임차 보증금이 2017년 이후 472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갈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올 들어 7월까지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만 122억 원을 넘어섰다. 주요 민생 과제 중 하나로 ‘전세 사기 근절’을 고심 중인 정부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4일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미납 세금 공매에 따른 임차 보증금 미회수 내역’ 자료에 따르면 올 1~7월 임대인의 세금 미납으로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122억 1600만 원(101건)으로 집계됐다. 8~12월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연간 피해 보증금 93억 6600만 원(143건)을 이미 넘어섰다.
세입자의 피해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52억 5000만 원이던 피해 보증금은 올 들어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피해 규모를 보면 세입자는 915명, 금액 기준으로는 472억 2100만 원에 달한다. 캠코 관계자는 “최근 특정 체납자의 다수 주택 보유로 인한 보유세 등 세금 체납으로 공매 의뢰가 늘었다”며 “올해는 수도권에서 신축 빌라, 오피스텔 등 깡통 전세로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캠코는 임대인의 세금(국세·지방세), 공과금 체납 시 압류된 주택 등 소유 재산을 공매 처분해 체납 세액을 회수한다. 이때 세금은 보증금 등 다른 채권보다 우선해 변제된다. 즉 주택을 처분한 금액으로도 임대인이 밀린 세금을 충당하지 못할 경우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세입자의 피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금리 인상, 매수세 위축에 따른 주택 경기 둔화로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격과 맞먹거나 이를 웃도는 깡통 전세 위험까지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통상 업계에서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를 넘으면 깡통 전세의 위험이 크다고 보는데 7월 서울 오피스텔 전세가율(KB부동산 기준)은 83.8%에 달한다. 이는 2011년 1월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다. 특히 서울에서도 외곽 지역인 서남권과 서북권은 각각 86%, 86.4%로 평균보다 높다.
이에 따라 임차인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9월 발표 예정인 전세 사기 방지 대책 중 하나로 임대인 세금 체납에 따른 세입자 피해 방지 대책을 포함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대차계약 시 임대인의 세금완납증명서 첨부를 의무화하거나 공인중개사를 통해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다. 지금은 세입자가 국세청의 ‘미납국세열람제도’를 활용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세입자의 열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홍기원 의원은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해당 주택이 공매에 넘어가면 조세 체납액은 어떤 채권에 대해서도 최우선 순위를 갖게 되고 세입자는 변제 순위에 밀려나 보증금 반환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며 “전세금 미반환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 더 안전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계약 전 집주인의 세금 체납액을 확인하는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