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해 군사훈련을 시작하면서 한국·대만의 무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중 갈등이 더 격화될 경우 중국뿐 아니라 반도체 등 대만에 수출하는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항공사는 벌써부터 대만 직항편을 취소·변경하고 나섰다.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나라와 대만의 무역(수출·입 총액) 규모는 282억 8853만 달러(약 37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20억 6100만 달러)보다 28.2% 더 늘었다. 수출(144억 851만 달러)은 31.5% 증가했고 수입(138억 8001만 달러)은 25.0% 불었다. 무역수지도 5억 2850만 달러 흑자를 봤다.
상반기 대만이 우리나라 전체 교역에서 차지한 비중은 4.0%가량이다. 이는 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호주에 이어 전체 교역 상대국 가운데 6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대만은 수출·수입 규모 부문 모두에서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과 대만의 무역 규모는 최근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12년에는 대만과의 무역 규모가 288억 2681만 달러로 7위에 머물렀지만 지난해에는 477억 7108만 달러로 호주보다 높은 5위로 올랐다.
이런 탓에 우리 산업계는 대만 주변 해·공역에서 무력시위를 추진하는 중국의 동향을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다. 특히 대(對)대만 최대 수출 품목을 생산하는 반도체 업계는 큰 짐을 떠안게 됐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23억 6900만 달러)는 상반기 대만행 수출액 전체의 16.4%를 차지하며 최대 수출 품목 자리를 지켰다.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이나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도체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만에 각종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생산기지와 전자 부품회사가 다수 포진된 점도 위험 요소다. 미국이 한국·미국·일본·대만 간 반도체 연합인 이른바 ‘칩4 동맹’을 본격 추진하는 시점에 맞춰 자칫 공급망의 핵심축이 교란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물류·공급망 차질을 겪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군사행동 기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아직 물류 차질 등 기업의 애로 사항이 접수된 것은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충돌 수위가 높아질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대만을 오가는 항공편부터 흔들리고 있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중국이 군사행동을 개시한 이날 대만 직항편 운항 스케줄을 3시간 앞당기고 5일 예정된 항공편은 아예 취소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양국을 잇는 항공편을 현재 주 6회 운영하고 있다. 이 항공사는 6~7일 항공편 운항 여부는 하루 전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매주 5회 대만 직항 노선을 운영하는 대한항공(003490)도 5~6일 항공편을 취소했다. 7일 항공편은 애초 시간보다 1시간 늦춰 오전 11시 35분에 출발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5일 대만 직항편 예약 승객들은 7일 항공편으로 예약을 바꾸거나 무상으로 환불받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