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공공행정의 미래를 바꿀 핵심 기술입니다.”
지난달 4일 스위스 추크시청에서 만난 칼 코벨트 시장은 “데이터의 보관·관리나 개인 신분 확인 등 다양한 공공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크립토밸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추크시는 서울 용산구 면적만 한 작은 도시지만 블록체인 기업만 500곳 이상이 모인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의 핵심 기지로 꼽힌다. 코벨트 시장은 크립토밸리 행정부 수장답게 “블록체인을 행정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지, 시민들의 실제 삶에 어떻게 이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추크시는 일찌감치 블록체인 기술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이를 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6년 3월 전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공식 지불수단으로 인정했는데, 과감한 시도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코벨트 시장은 “시에서 비트코인을 한 번 제대로 이해해 보고자 내린 결정”이라며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처음에는 파일럿 프로젝트에 불과했지만 블록체인 기업들이 하나둘 크립토밸리로 모여들자 전 세계가 추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중 14곳은 현재 기업가치 1조원을 넘기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수많은 기업과 일자리가 생겨나며 침체됐던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코벨트 시장은 “블록체인이 미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란 확신이 생겼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추크가 선구자 역할을 하면서 스위스 연방 정부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8년 스위스 최고 행정기관인 연방평의회에서도 “스위스의 분산원장 기술 및 블록체인 법안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를 내며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 부문에 활용한 사례들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추크에서는 2018년 파일럿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분증(ID)를 만들어 배포했다. 신분증이 블록체인 위로 옮겨간 셈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ID를 이용한 실험 투표까지 진행했는데 일주일간 72명의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코벨트 시장은 “실제 선거는 아니었고 블록체인 기술을 투표에 활용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시험해본 것”이라며 “직접 해보니 실제로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투표는 중앙집권적인 특성이 있지만 디지털 ID를 활용하면 그런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다”며 “기표소에 모이지 않고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코벨트 시장은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공공부문에 널리 활용되기 위해선 시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특히 선거처럼 민감한 사안도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크는 스위스에서 가장 처음으로 암호화폐 세금 납부를 허용한 도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세금, 공공요금 등을 납부할 수 있다. 최근 암호화폐 시세가 크게 하락했는데 이로 인해 재정상 어려움이 생기진 않았냐는 질문에 코벨트 시장은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받는 당일 스위스 프랑으로 즉시 바꾸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시의 운영과 암호화폐의 변동성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올해 들어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 찬바람이 불어닥쳤지만 추크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크립토밸리 진흥에 힘쓰는 모습이다. 코벨트 시장은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일부분에 그칠 뿐”이라며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크립토윈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크립토밸리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어떤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 진정한 고민을 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암호화폐보다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하는 회사들이 늘면서 크립토밸리의 기반이 오히려 탄탄해졌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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