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고 있듯,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사람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다. 그는 20대 중반 나이에 NASA(미항공우주국) 전신인 NACA(미국항공자문위원회) 테스트 파일럿으로 뽑혀 마하의 속도와 극한의 고도를 이겨내왔다.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도 숱하게 살아남은 덕분에 마침내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사령관으로 1969년 7월 21일 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50여년 전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가 지난 8월 5일 오전 8시 8분 성공적으로 지구를 떠나 4개월여간의 긴 여정에 나섰다. 다누리 임무의 최종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아직 많은 과정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부와 과학자들은 이번 미션을 통해 확보한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는 2031년 유인 달 탐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미국은 2년 뒤 유인 달 착륙선 '아르테미스'를 쏘아올린다. 우리나라도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정식 합류, 국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퍼스트 맨(First Man)'은 인류가 왜 달을 향해 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영화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연출한 데미언 샤젤 감독의 가장 최근작이다. 라이언 고슬링 배우가 닐 암스트롱 역을 맡았다. SF영화지만, 인류 최초로 달에 가야만 했던 한 인간이 맞섰던 극한의 두려움과 고민을 역동적인 연출과 카메라 워킹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닐의 테스트 비행 장면으로 시작한다. 닐이 나사의 제미니 계획에 공식 합류하기 전 모습이다. 당시 각국이 경쟁적으로 초음속 비행기 개발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닐은 기기 오작동으로 대기권 밖으로 튕겨져 나가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돌아온다. 그 순간 바라본 푸르른 지구의 모습은 고요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제미니 계획에 합류할 조종사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한 닐에게 면접관은 왜 우주 비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닐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고강도 훈련이 이어지며 하나, 둘 목숨을 잃는 동료들이 생기고. 그렇게 마주한 제미니 8호 우주선의 모습은 커다란 쇳덩어리에 가깝다. 대체 이런 걸 타고 어떻게 우주로 가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심정을 표현한 라이언 고슬링 배우의 무심한 듯, 무표정한 듯,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그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비좁은 우주선 안을 휘젓는 카메라의 불안한 시선, 그간 SF영화 속에서 봐 왔던 멋진 우주선 모습이 아니다. 이미 많이 손을 탄 듯한 낡은 기체. 게다가 파리도 한 마리 들어와 있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마음이 편하다. 10, 9, 8, 7, 6, 5, 4, 3, 2, 1, 점화! 제미니 8호 미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지구 궤도상에서 우주선끼리 도킹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해야 달 궤도에서 소형 유인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는 아폴로 계획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궤도에 올라도 문제는 연이어 터진다. 닐이 탑승한 제미니 8호는 무인 위성 에이지나와 도킹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프로그램 오작동으로 우주선이 초고속 스핀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가족들은 불안에 떨고. 닐은 에이지나를 포기하고 순발력을 발휘해 가까스로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목숨을 구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기자들의 질문 세례였다. 한 기자는 묻는다. 이미 두 명의 조종사가 이번 프로그램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런 희생을 치르고도 계속 달에 가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계획이 진행될 수록 우주개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진다. 시위대는 힙합 대부 길 스캇 헤론의 곡 whiteys on the moon을 부르짖는다. "난 병원비 낼 돈도 없어, 근데 백인들은 달에 간대! 어젯밤에 월세도 올랐네, 근데 백인들은 달에 가!" 정당성이나 논리보다는 구 소련(러시아)과의 자존심 경쟁이라는 정치적 목적만이 작용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닐, 아니 라이언 고슬링의 초연한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역사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닐 앞에 국민 세금이 더 중요하다는 의원의 반론도 더해진다. 그 와중 또 사고는 터진다. 그을린 화염 넘어 보이는 하늘 위 달은 너무나도 멀어보인다.
"한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도약입니다." 결말은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장면이다. 지구를 떠난 닐과 아폴로 11호는 장장 나흘을 걸쳐 달로 직진했다. 그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었던 인류의 가장 먼 첫 비행 장면을 카메라가 제대로 재현해낸다. 우주선 창문 밖으로 짙은 회색빛 월면이 보일 때, 정말 두려움이 솟는 기분까지 든다. 마침내 광활한 월면 위 고요의 바다에 무사히 착지, 숱한 어려움과 희생 끝에 마침내 내디딘 인류의 첫 순간을 영화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린다. 이때 실제 아폴로11호 착륙 당시의 무선 교신 녹음 음성이 영화 대사로 그대로 사용돼 그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50여년 전 인류는 부족한 과학 기술로도 지구로부터 384,000km 떨어진 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거리가 훨씬 더 먼 화성에도 탐사선을 보냈다. 심지어 3억 4,000만km 떨어진 소행성에서 흙 시료를 채취해오기도 했다. 이제는 민간 우주여행의 시대도 열렸다. 인류는 다시금 달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영화에서, 아폴로 11호의 선장이 된 닐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선 비행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비행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가 왜 달에 가야하는지, 영화 '퍼스트 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식평 - 후우, 진짜 달에 갔다오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