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총 2800억 달러(약 366조원)를 투입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반도체 산업육성법'에 서명, 공표했다.
9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늘은 건립자들(builders)을 위한 날이다. 오늘로부터 50년, 75년, 100년이 지나서 사람들은 이 날을 돌아보며 이날이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육성법 공표의 기쁨을 밝혔다. 지난달 미 의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반도체 신규 투자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담고 있다.
520억 달러의 반도체 지원금에는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390억 달러) △연구 및 인력 개발(110억 달러) △국방 관련 반도체 칩 제조(20억 달러) 등이 포함된다. 향후 4년간 반도체 투자에 대해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세액공제액은 240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 법안에는 미국이 첨단 분야의 연구 프로그램 지출을 크게 늘려 기술적 우위를 지킬 수 있도록 과학 연구 증진 등에 2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법안 서명에 앞서 "손가락보다 작은 반도체가 스마트폰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며 "30년 전에는 미국에서 전체 반도체의 30%가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10%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국과 한국, 유럽은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역사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돌아왔다"며 관련 산업 육성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반도체 제조업 되살리기에 나서면서 미국 내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인 인텔·TSMC·삼성전자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신설 또는 확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로비에 나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재블린 미사일 등 핵심 무기에도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한때 세계 1위의 연구·개발 투자국이었지만, 현재는 9위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수십 년 전만 해도 8위였지만 현재는 2위다. 다른 나라도 근접하고 있다"며 기술 개발 필요성도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법안 시행을 두고 미국의 경제·산업 정책 방향이 정부 주도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미중 문제 전문가 스콧 케네디는 “반도체 산업육성법의 채택, 공표는 미국 경제 정책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국가 안보든, 보건, 환경의 문제이든 관계 없이 각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과거에 비해 보다 필수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시대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