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 10월 물가 정점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최근 “10월 전후로 물가가 정점일 것이라는 전망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가 정점 시기로 9월 말~10월 초를 제시했다. 유가·곡물가 등 대외 변수가 급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1일 국제 유가 안정을 전제로 “2~3개월 뒤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는 급등하고 있지만 전월 대비 상승 폭은 줄고 있어 통계상으로도 물가 정점이 다가오는 모양새다.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월은 3%대 후반, 3~4월은 4%대, 5월은 5%대, 6월은 6.0%, 7월은 6.3%로 급등하고 있다. 그러나 전월 대비로 보면 1~2월은 0.6%, 3~5월은 0.7%, 6월은 0.6%, 7월은 0.5%로 조금씩 둔화하고 있다.
물가에서 가장 큰 변수는 국제 유가다. 브렌트유 기준 3월 초 배럴당 장중 139달러까지 올랐던 국제 유가는 최근 95달러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다 고유가에 따른 미국의 원유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가 유가 하락을 이끌었다. 세계적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 밀 수출 재개 등으로 국제 곡물가도 하락세다. 7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8.6% 하락했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하락세다. 4월부터 4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유럽의 빡빡한 원유 사정, 중국의 경기 회복,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의 원유 생산 능력 감소 등을 근거로 유가가 다시 오를 것으로 보는 전망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물가 정점론을 제기하는 이유는 우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확산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월 2.9%에서 5월 3.3%, 7월 4.7%로 급등하고 있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 누구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자신이 취급하는 품목의 가격을 경쟁적으로 인상하게 된다. 인플레이션 악순환인 셈이다. 반면 곧 물가 정점이 온다고 하면 이 같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다.
물가 정점론을 제기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크게 올리고 있지만 앞으로 큰 변수가 없다면 인상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이 기준 금리를 0.75%포인트씩 두 차례 올리면서 한미 기준 금리는 미국 2.5%, 한국 2.25%로 역전됐다. 미국은 최근 고용 사정 호조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한 번 더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최근 국회에서 연말까지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씩 베이비 스텝으로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추가 인상 압박이 거세지는 셈이다.
최근 국내 물가 급등은 수요 쪽 요인보다는 공급 요인이 주원인이다. 국제 유가, 곡물가 급등 등 대외 요인과 채소 값 등 농축수산물 급등, 공공요금 인상 등이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수요 억제를 주로 노리는 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에 미치는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 총재가 최근 “물가를 금리만으로 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금리를 그대로 두고 잡기도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한 것이 이 같은 고민의 일단을 드러낸다.
오히려 금리 인상은 물가 정점이 곧 다가오는 가운데 물가 안정에 미치는 효과도 제한적이고 경기 침체만 가속시킬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재정 긴축을 강조하고 있어 재정으로 경기를 떠받칠 여력도 없다. 그렇다면 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가급적 자제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급증한 가계 부채를 고려할 때도 금리 인상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