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전용 치과병원 못 만든 게 恨이죠"

'45년간 취약계층 무료 진료' 백광우 前아주대 교수
비장애인보다 관리 더 필요하지만
수익 낮아 의사·인프라 매우 부족
졸업 후 美일리노이 치대서 연수
귀국 후 보호시설·소년원에 도움
年3회 필리핀 직접 찾아 봉사도



“소아와 장애인을 위한 진료를 하는 건 제 숙명이지요. 다만 장애인을 위한 치과를 제 손으로 만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습니다.”


미국인 알로이시오 슈워츠 신부가 전쟁고아를 위해 세운 ‘소년의집’에서 지난 45년간 무료 진료를 펼친 백광우 전 아주대 교수는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봉사는 일상이어서 특별하지도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치과 의사로서 봉사 활동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소아와 장애인을 위한 선진 의료 시스템을 공부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미 돌아가신 슈워츠 신부님이 미국 연수를 위한 추천서를 써주실 때 한국에 반드시 돌아와 장애인을 위한 진료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신부님과의 약속을 지키다 보니 제 인생의 궤적이 이렇게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5년 미국 일리노이대 치과대학에서 3년간 소아 치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2년간 조교수로 재직하며 정신지체와 중증장애인 환자의 치과 진료를 수행했다. 그는 “당시에는 치과에서 부모님이 어린이들의 진료를 위해 때리기도 했다. 장애인의 진료는 당연히 모두가 회피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과 장애인들에게 마취를 하면서 짧은 시간에 최대한 정교한 치료를 하는 미국 치과 의사들을 보고 소아·장애인 치과 진료에 매력을 느꼈다”고 되돌아봤다.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백 전 교수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부터 서울과 부산으로 나뉘어 운영 중인 소년의집에서 무료 진료에 나섰다. 서울은 매주, 부산은 한 달에 한 번 기차를 타고 내려가 아이들의 진료를 도맡았다. 소년의집에서 봉사하는 수녀님들에게 무료로 틀니도 만들어드렸다.


또 1993년에 노숙인을 위한 생활 시설인 ‘은평의마을’에 치과 진료실을 개설하고 치과 의료 장비를 보냈다. 또 2008년부터는 안양소년원 소년보호위원으로 활동하며 지금도 정기적으로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검진과 충치 치료 활동도 하고 있다. “소년원의 아이들 치료는 매개체일 뿐이에요. 저는 치과 진료를 고리로 삼아 아이들을 순화시키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치위생사에 도전하라고 북돋았더니 1~2명이 정말 치위생사가 됐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의 활동 영역은 필리핀까지 뻗어 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선종한 이듬해인 1993년부터 필리핀 소년의집에 추석과 구정 연휴 등을 이용해 1년에 세 번 정도 현지를 찾기 때문이다. 현지인 치료는 현지인이 직접 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 동료 몇 명과 필리핀 소년의집 출신 의대생에게 6년간 장학금도 내놓았다. 그 학생이 이제는 의사가 돼 자원봉사를 한다. 백 전 교수는 “필리핀에서 작은 선순환 고리를 만든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이 같은 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바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치과 병원 설립이다. 백 전 교수는 “노인이 되면 모두 장애인이 되고 요양원에 계신 환자들은 치과 진료의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면서 “또 자폐·치매 혹은 정신장애가 있는 환자는 건강한 환자에 비해 치료뿐 아니라 정기적인 치아 위생 관리와 구강 보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환자들은 간단한 치과 진료에도 어려움이 많아 진정 요법 및 마취 등의 보조가 필수적”이라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인프라와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앞으로 장애인 환자의 치과 진료 발전에 있어서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진료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이 부족한 이유는 당연히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 전 교수는 “일반 대학병원에서 장애인 진료를 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임상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주고 싶지만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저마저 장애인 진료를 하지 않으면 이들을 누가 돌보겠느냐. 이게 바로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도 후회가 남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백 전 교수는 “물질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보니 자신이 한 일에 많은 돈을 받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저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소명이라 생각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는 게 그저 행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필리핀 한인회 등이 지원해 최근 현지에 설립된 병원 건물 준공식이다. 그는 “2019년에 한·필리핀 수교 70주년을 기념해 치과 진료 병원을 설립하는 작업이 진행됐지만 코로나19로 다소 지연됐다”면서 “올 9~10월에 굿네이버스에서 치과 재료와 장비 등을 지원받아 훨씬 개선된 환경에서 무료 진료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웃어 보였다.



알로이시오 슈워츠 신부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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