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이어 중국산 배터리 견제에 나선 미국의 영향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망 변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원자재 공급망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 남미로의 조달 비중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051910)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공장을 북미 지역에 세우기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원래 캐나다에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 주 정부들이 제공할 인센티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부지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은 북미 등 해외 생산거점을 확대해 연간 양극재 생산능력을 지난해 말 기준 8만톤에서 2026년 26만톤까지 대폭 늘릴 계획이다. 2030년까지 미 제너럴모터스(GM)에 95만톤 이상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포스코케미칼(003670)은 미국 완성차 업체 GM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현지에서 양극재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포스코케미칼 관계자는 “앞으로 북미 합작사를 중심으로 중간 원료인 전구체 공장 신설, 양극재 공장 증설 등 양·음극재 추가 공급을 해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양사 간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미 루이지애나주에서 롯데알미늄과 함께 양극박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2025년 완공을 목표로 약 3300억 원을 투자한다. 양극박은 양극재를 코팅하는 알루미늄 소재로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 SKC(011790)는 북미 지역에 동박 공장을 짓기 위해 후보 부지를 찾고 있다.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에서의 투자를 늘리는 것은 지난 7일 미국 상원에서 가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을 미국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찍이 배터리 셀 공장 진출을 확정한 LG에너지솔루션(373220)·SK온·삼성SDI(006400)에 이어 이들 회사에 소재를 공급할 국내 대기업의 현지 거점 설립도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업계에서는 ‘K-반도체’ 기업들의 몸값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중국산 배터리를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행보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주나 남미 등지로 원자재 조달처 다변화에도 공들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리튬 확보를 위해 호주 리튬 광산 업체 필바라사와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광석에서 추출한 리튬을 생산할 예정이다. 호주는 미국과 FTA를 맺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또 아르헨티나 염호 광권을 인수해 올해부터 본격 수산화리튬 생산에 나선다.
포스코그룹은 미국,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에 흑연 광산 투자를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호주 광산에서 천연흑연을 2024년부터 연간 4만톤 가량 공급받기로 했다. 인조흑연은 미국과 호주 광산에서 2025년부터 2만톤 가량 받을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 의존도를 계속 낮추고 있다.
LG화학은 북미 최대 규모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라이사이클에 지분을 투자하고 2023년부터 10년간 재활용 니켈 2만 톤을 공급받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고려아연과 손잡고 재활용 원자재를 활용해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24년부터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전구체는 양극재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간 원료로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의 광물을 가공해 제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