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우발 범죄를 줄이려면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우발 범죄 전과자 4명 중 1명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만큼 재범률이 높다.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 질환을 조기에 치료하는 동시에 소득 불평등 개선 등 우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12일 서울경제가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우발 범죄 감소 해법으로 처벌 강화보다는 치료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됐다가 복귀하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청 범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전과자 4명 중 1명은 우발적인 원인으로 또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재범을 저지른 범죄자 중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었던 경우는 28.1%에 달했다.
전과자가 우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2016년부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과자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율은 2016년 20.2%에서 2018년 25.5%로 급증했다. 2020년 27.3%를 기록하는 등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국회의원들이 표를 받기 가장 쉬운 방법이 형량을 높이는 것”이라며 “형량 강화가 자칫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개별 범죄 형량을 올리다 보면 강도상해죄가 살인죄보다 형량이 높아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형량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흉악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 질환에 대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 질환은 발견이 늦을수록 치료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며 “빨리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치료율도 높아지는 만큼 조기 치료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신 질환 치료에 대한 낙인 우려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전준희 경기도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치료를 잘 받게 하려면 편견과 낙인이 없어야 하는데 정신병원을 다니면 이상하게 보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며 “조기에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거나 치료하지 않고 병이 악화된 후 격리시키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취직, 보험 가입, 인간관계 등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이 발생할 수 있어 치료에 저항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폭력성 위험이 커져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치료 명령’ 판결을 활발하게 내리는 것이 우발 범죄를 줄이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치료감호가 징역형을 사는 동안 감호소 등에서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면 치료 명령은 범죄자에게 ‘통원 치료’를 강제한다.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미 법원은 집행유예 조건부로 치료 명령 판결을 자주 내린다”며 “치료 명령 제도는 재범 방지, 범죄자 교화 등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실히 판명이 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지원과 교육 등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사회 안전망 강화도 대안으로 지목된다. 최익구 국선 변호사는 “범죄는 결핍이 있을 때 분노로 이어지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조건 형량을 강화하기보다 교육, 치료, 일자리 지원 등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설계해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