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VC 뭉칫돈, 中·홍콩 떠나 싱가포르 대이동

에이티넘·스틱·다올 등 올 해 현지 법인·지사 설립
정부 규제·코로나 통제에 中 투자 '올스톱'과 대조
한투파, 국내 금융사 손잡고 6000만弗 펀드 추진

싱가포르 금융중심지 마리나베이 전경.(사진=싱가포르관광청)

동남아시아 벤처투자 시장이 국내 벤처캐피탈(VC)들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를 필두로 대형사들이 잇따라 싱가포르를 교두보 삼아 동남아 벤처투자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향후 현지 유망 스타트업 투자를 선점하려는 한국 VC들간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투자 시장이 과실송금(이익 잉여금 배당) 제한과 과도한 코로나 통제 등으로 경쟁력을 잃자 싱가포르가 대안으로 한 층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다올인베스트먼트(298870)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LB인베스트먼트 등이 동남아 현지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싱가포르 등에 현지 사무소 또는 지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원활한 투자처 발굴과 투자 기업 관리를 위해 동남아 현지에 거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교통과 금융이 발달한 싱가포르가 최우선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다올인베스트먼트는 연내 싱가포르에 사무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행정 절차 검토 및 인력 확보 등에 나섰으며 중국 사무소장인 현지훈 상무가 싱가포르 사무소장을 겸하면서 중국 사무소의 일부 인력도 현지로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모회사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그룹이 싱가포르에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동남아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에 앞서 VC업계 ‘톱 3’로 꼽히는 에이티넘인베스트(021080)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026890)도 올 들어 지난 2월과 4월 각각 싱가포르에 법인 및 사무소를 개소하며 현지 투자 역량을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장을 추진 중인 LB인베스트먼트도 동남아 투자 확대를 계획하면서 싱가포르 등 현지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인력을 파견할 방침이다.


그간 국내 VC들은 해외 투자의 경우 홍콩과 중국을 우선 고려해 왔으나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잇따른 지역 봉쇄와 방역 강화에 과실 송금 제한 등 해외 투자자에 대한 각종 규제 강화 등이 겹치자 싱가포르를 필두로 동남아로 VC들이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사들의 지사 설립이 활발했던 홍콩도 빠른 속도로 중국화가 진행돼 경제 활동의 자유가 위축되자 국내·외 투자사들이 하나 둘씩 발을 빼는 모습이다.


실제 일부 국내 VC는 중국 투자 비중을 대폭 줄이거나 현지 사무소 폐쇄까지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VC 대표는 “사실상 코로나 이후 국내 벤처캐피탈의 중국 투자는 올스톱된 상황” 이라며 "경제 성장률이 높고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운 싱가포르 등 동남아 벤처투자 시장이 중국을 대체할 투자처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 2019년 법인을 설립하며 국내 VC로는 가장 먼저 동남아 시장 개척에 나선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올 해 현지에서 6000만달러 규모의 벤처 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신규 펀드는 싱가포르 본부장인 김종현 상무가 주도하고 있으며 신한·우리금융 등 국내 금융지주 계열사들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하기로 했다. 한투파의 싱가포르 법인에는 김 본부장을 비롯해 3명의 투자 인력이 상주하고 있는데 펀드 조성이 완료되면 추가 인력도 채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티넘도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하면서 동남아 현지 펀드 조성을 계획 중이다. 설립 때부터 펀드 운용을 고려해 단순 사무소가 아닌 법인격을 갖는 지사 형태로 설립한 에이티넘은 '벤처캐피탈 펀드 매니저(VCFM)' 라이선스도 취득해 놓고 있다. 네이버 싱가포르 법인에서 동남아 투자를 담당한 나민형 이사가 지사장을 맡았으며, 향후 점진적으로 인력 및 투자 규모 등을 확대할 예정이다.


동남아 투자를 겨냥해 최근 2000억 원의 '신한 글로벌 플래그십펀드'를 조성한 신한벤처투자 역시 1000억원 이상을 동남아 스타트업들에 투자한다는 방침 아래 성과가 좋으면 후속 펀드 조성에 나서는 한편 싱가포르 법인 설립도 고려하고 있다. 신한벤처투자의 핵심 관계자는 "동남아 벤처 업계는 미국·유럽 등에서 유학한 인재들이 돌아와 창업에 나서면서 스타트업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 며 "유망 투자처를 선점하려는 전 세계 VC들이 모여들고 있어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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