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정문에 들어서자 공원을 연상하게 하는 푸른 나무와 연못을 마주 보고 일렬로 들어선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본관과 연결된 연구동 내부는 원통형·파우치형 등 전기차 배터리의 종류와 주요 고객사별로 분류된 연구실로 구성됐다.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대형 설비들로 가득 찬 각 연구실 안에서는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 차림의 자유로운 복장을 한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1995년 설립된 대전 기술연구원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늘날 배터리 업계를 선도하는 다양한 세계 최초의 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 LG화학은 1992년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2차전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소형 전지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자동차 전지로 연구개발(R&D)의 범위를 넓혀왔다. LG에너지솔루션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배터리 업계가 많이 성장해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춤형으로 제품을 공급하기 쉽지만 초기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며 “소형 전지에서 대형 전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다른 회사는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소재를 적용해보며 현재 보편화된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혁신 기술이 ‘더블 레이어 코팅(2종 전극 슬러리 동시 코팅)’이다. 이 기술은 전극의 활물질과 첨가제, 용매 등이 혼합된 물질인 ‘슬러리’ 2종류를 집전체에 동시에 코팅하는 것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음극 슬러리를 집전체인 동박에 코팅한다. 음극재를 강화해 배터리의 충전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타이칸은 현재 20분이면 완전 충전이 가능하다.
더블 레이어 코팅 기술 개발을 주도한 최상훈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지난달 ‘대한민국 엔지니어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최 상무는 “이 기술을 적용하면 배터리 생산성을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의 충전 속도까지 대폭 개선할 수 있어 전기차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2019년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 적용한 실리콘 음극재 기술도 배터리 충전 속도를 개선하고 용량을 늘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현재는 음극재 원료로 대부분 흑연이 쓰인다. 흑연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다. LG에너지솔루션은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10배가량 높은 실리콘을 음극재에 적용했는데 실리콘을 첨가하면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다. 회사는 팽창을 막아주는 탄소나노튜브(CNT) 도전재를 넣어 이 같은 우려도 덜었다. 처음 5%였던 실리콘 비중을 현재 7%로 늘려나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업계에서는 실리콘을 음극재 원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가장 먼저 시도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며 “이밖에 분리막에 세라믹 코팅을 입히는 기술, 니켈 비율을 50%으로 높인 하이니켈 배터리 등 모두 과감하게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성공적인 기술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R&D 투자도 늘려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5조 3000억 원을 R&D 투자에 쏟았고 그 비중도 늘려나가고 있다. 2020년 매출액 대비 3.4% 수준이었던 R&D 투자 비중은 올해 1분기 4.2%로 올랐다. 그 결과 소재와 공정, 핵심 기술 분야에서 2만 40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인 중국의 CATL(4000개)의 6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허의 영역도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50~60% 정도는 소재와 배터리 셀과 관련됐으며 나머지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등 시스템과 관련된 특허다. 구체적으로 △NCMA 단입자 양극재 적용 △고효율 실리콘 음극재 적용 △엔트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코발트 프리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등 다양한 R&D를 진행하고 있다. 전 산업계에 걸친 고급 인력 부족 현상에도 전 세계에 3300여 명의 R&D 인력이 포진해 있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도전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전해질을 고체로 사용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액체 전해질은 온도 변화로 인한 팽창 등으로 안전 위험이 있지만 고체 전해질은 충격과 훼손 등에 강하다. 다만 구현 자체가 어려운 기술인 만큼 아예 개발을 포기한 기업도 여럿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준비 중인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 종류에 따라 크게 황화물계와 고분자계 등 두 가지다. 회사는 우선 고분자계 전고체 배터리를 2026년 출시한 뒤 2030년 황화물계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NGBS(Next Generation Battery Seminar) 2022’ 행사에서 “초기에는 액체 전해질을 섞은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나오다가 단점을 보강하면서 순수한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며 “황화물계는 수분에 취약해 극한의 건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등 기술 허들이 높지만 궁극적으로는 황화물계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