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에 8월 15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진 해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패전국 식민지’였다. 결국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분리됐고 미군정이 일제 지배 체제를 대체하게 됐다.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과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등 우여곡절을 거쳐 유엔 소총회는 1948년 2월 26일 조선의 가능한 지역, 즉 남한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1948년 5월 10일 총선이 실시됐다. 북제주 2개 지역구를 제외하고 총선이 이뤄졌는데 남로당 등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90%를 크게 웃돌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내 손으로 우리 대표를 뽑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민은 감격했다. 같은 해 5월 31일에는 역사적인 제헌국회 개원식이 있었다. 국회의원 정원은 300석이었으나 100석은 북한 지역이었고 북제주 2개 지역구에서도 선거가 이뤄지지 못해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됐다.
당시 최고 연장자인 이승만 박사가 의장 선거에서 188표를 얻어 초대 국회의장이 됐다. 바로 다음 날인 6월 1일에는 국회 제1차 본회의가 개최됐다. 같은 달 23일에는 유진오 고려대 교수 등이 초안을 잡은 헌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7월 12일 국회는 제28차 회의에서 헌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닷새 뒤인 7월 17일 이승만 국회의장이 헌법에 서명함으로써 헌법이 제정됐다. 같은 날 대한민국 제1호 법률인 정부조직법도 통과됐다. 국회는 사흘 뒤인 7월 20일 제33차 본회의를 열고 이 의장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헌법 제53조는 재적 의원 3분의 2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198명 중 196명이 투표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180표, 김구 선생과 안재홍 선생이 각 13표와 2표를 얻었다. 무효표는 1표였다.
8월 15일 오전 11시 25분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이 있었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등장한 이 대통령은 “동양의 한 고대국(古代國)인 대한민국의 회복”을 선언했다. 오세창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만세삼창과 함께 대한민국은 출범했다. 하지만 해방과 정부 수립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완전한 상태로 출범한 정부는 곧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에 직면했다. 민족상잔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시작된 분단이라는 모순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간 남북 관계는 정권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갔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초대 이 대통령이 목 놓아 외쳤던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의 완전한 회복’은 70여 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모순에서 벗어날 때 8월 15일이 지닌 완전한 독립에 이르지 않을까. 광복절 77주년을 맞이한 오늘,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