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에서 주식·외환·채권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금이 이들 국가에서 발길을 돌려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선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 향하는 ‘머니무브’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의 ‘기초 체력’이 취약한 나라를 대상으로 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규모는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5일 금융 정보 회사 레피니티브를 인용해 10년물 국채금리가 10% 이상인 국가가 이달 10일 기준 15개국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가나(33%), 스리랑카(27%) 등이 특히 높은 금리를 기록했으며 15개국 중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 국가(8개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는 “미국 등 주요국의 국채금리가 대부분 3%대를 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의 국채금리가 이 정도로 높다는 것은 그만큼 외자 조달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신흥국의 주식·외환시장에서도 자본 유출 속도가 가파르다. 3월 말과 비교했을 때 스리랑카 루피화 가치는 10일 기준으로 19% 하락했다. 스리랑카 주가지수는 2%가량 떨어졌다. 또 파키스탄과 가나는 환율이 18% 오르고(통화 가치 하락) 주가지수가 각각 5%, 10% 낮아졌다. 투자자들이 신흥국 자본시장에 넣었던 투자금을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 시장으로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대규모 자금 이탈은 신흥국의 외환보유액 부족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IMF의 특별인출권(SDR) 지원 잔액은 사상 최대 규모인 1430억 달러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말과 비교했을 때 47%나 많은 액수이기도 하다. 닛케이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3월 14억 달러 규모의 긴급 자금을 제공하고 최빈국에 장기·저리 자금을 공급하는 ‘빈곤감축·성장기금(PRGT)’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IMF가 스리랑카·파키스탄 등과 추가 지원을 협의하는 것을 고려하면 지원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 사이에서 디폴트가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선제적인 채무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주빌리부채운동(JCD)의 제롬 펠프스 대표는 “수십 년 동안 IMF의 대출은 너무 적고 너무 늦었다”며 “더 많은 국가들이 스리랑카처럼 끔찍한 상황에 처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채무 재조정을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