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00일을 지나면서 돌아보는 한국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잘한 것도 아직은 없지만 인사와 태도를 제외하면 그리 크게 잘못한 것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칭찬도 없이 야당은 입만 열면 비판보다 비난에 열을 올린다. 국회의원들은 유럽의 선진국들보다 서너 배 많은 월급과 인턴까지 무려 9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떵떵거리고 세금을 물 쓰듯 허투루 쓰면서도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은 대표라는 사람이 자기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과 동료 의원들을 싸잡아 사람이라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마구 퍼붓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이 잘났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뻔뻔스러운 태도다. 차마 눈 뜨고는 보기 어려운 한국 정치의 참혹한 현실이지만 오늘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행태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0대 중반 박근혜 비대위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이준석은 운이 억세게 좋았다는 점 외에는 어떤 것도 검증된 게 없었다. 이후 그는 몇 차례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했고 정치 평론을 하면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그런 그가 연이은 선거 패배 후 지리멸렬해진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한 반사이익이었다. 그런데 작은 재주가 많았던 이준석은 이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은 젊은 세대의 특성을 발휘해 기득권에 찌든 보수정당의 개혁을 시도했다. 능력을 기준으로 당직이나 의원 후보에 공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했던 점은 기득권자 외에는 모두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보수정당을 외면했던 2030 세대와 호남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던 것도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오히려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후보를 지원하는 활동은 정당 대표의 의무다. 대선 국면에서는 후보 중심으로 정당이 재편되고 모든 공은 후보에게, 모든 과는 대표를 포함한 다른 사람이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준석은 자신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다. 윤석열 후보가 선출되자 제갈공명의 비단 주머니 고사에 빗대어 자신에게 비책이 있음을 강조했고 연습 문제를 내놓았으니 이를 잘 풀면 도와주겠다는 등의 오만불손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윤핵관’을 비난하면서 두세 차례 당무를 거부했고 그 결과는 후보의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유세 중인 후보가 지방으로 잠적한 이준석을 찾아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서야 다시 유세로 복귀해 자신이 대선의 컨트롤타워임을 거듭 강조했다.
결과는 0.73%의 박빙 승부였다. 이준석은 자신의 전략과 지휘로 이길 수 있었다고 자평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그는 안철수와의 단일화 과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이대남을 강조하다 이대녀의 지지를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정치 초년생 윤 후보를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고 그로 인해 오히려 더 큰 차이로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박빙으로 만든 주요 원인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자. 국민의힘 내홍의 본질은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이다. 그런데도 이준석은 이를 마치 ‘선악’의 문제로 포장해 스스로 억울한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이 대표인 정당을 불태워 버려야 하고 윤핵관만이 이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비대위 출범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비롯해 법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도 모두 이런 자아도취적 오만함의 결과일 뿐이다.
이준석이 자신을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한 윤 대통령과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이 사태는 시간문제였지 반드시 올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거가 없는 지금 이 사태가 터진 것이 행운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보수정당의 해결 방식이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재신임도, 이준석표 혁신위 해체도 모두 기득권 세력의 자기방어일 뿐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모두 보수정당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지지를 회복하려면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진정한 개혁에 매진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