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시 순이구에 위치한 옛 현대차 베이징 1공장. 지금은 떨어진 간판의 흔적으로만 이곳이 현대차의 생산 시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차가 해외에 지은 첫 생산 기지였던 이곳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전기차 업체 리오토(리샹)에 매각됐다. 이곳은 한때 베이징현대의 주력 생산 기지였지만 판매량이 급감하며 2019년 4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한때 7%를 넘기기도 했던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8% 수준까지 떨어졌다. 현대차는 결국 공장을 매각하고 상당수의 현지 인력은 구조 조정하는 한편 한국인 직원은 철수시켰다.
국내 수출 제조 기업들의 핵심 생산 거점이었던 중국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주요 도시 봉쇄로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던 저렴한 노동력도 인건비 증가로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미국·중국 간 무역 분쟁으로 이에 따른 불확실성도 더해지고 있다. 악화하는 투자 환경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더 나은 경영 환경을 찾아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서고 있다.
◇‘중국 엑소더스’ 시작한 韓 수출기업=21일 서울경제가 국내 수출기업 중 지속경영보고서를 통해 국가별 현지 직원 수를 공개한 12개사를 분석한 결과 8개사는 전체 해외 직원 가운데 중국 직원의 비중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현대차의 경우 2019년 1만 4638명이던 중국 직원이 2020년 1만 3159명에 이어 지난해에는 1만 741명까지 줄었다. 3년 사이에 27% 급감한 것이다. 전체 해외 직원에서 중국 직원의 비중은 같은 기간 28.9%, 26.6%, 21.3%로 계속 감소했다. 삼성전자 또한 2019년 2만 649명이던 중국 내 직원 수를 2020년 1만 8099명, 2021년 1만 7820명 등으로 꾸준히 줄여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판매하는 상하이 법인의 상반기 매출액은 1조 3055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3.6% 축소됐다. LG화학·기아·LG에너지솔루션·삼성SDS·현대모비스·SK네트웍스 등도 비율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직원 수가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2019년 광둥성 후이저우 공장의 문을 닫으며 톈진에 이어 마지막 남은 중국 휴대폰 생산 시설을 철수했다.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2013년만 해도 20%에 가까울 정도로 중국 시장을 호령했던 삼성이지만 지금은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다.
중국 내 사업이 축소되면서 사옥 매각도 이어지고 있다. LG그룹은 베이징 트윈타워를 2020년 2월 홍콩계 자본에 팔았다. SK 역시 중국 사업의 컨트롤타워였던 SK타워를 매각했다.
중국에서 잘나가던 화장품 업계도 중국 사업 비중을 연이어 줄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내 에뛰드·이니스프리 등 저가 로드숍 브랜드의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2019년 이후 중국 내 1000개가량(에뛰드 600여 개, 이니스프리 400여 개)의 화장품 매장을 폐쇄했다. LG생활건강은 이보다 앞선 2018년 총 130여 개에 달하던 더페이스샵과 네이처컬렉션 중국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했다.
유통 업계 또한 앞다퉈 진출했던 중국에서 발을 빼는 분위기다. 롯데는 한때 중국에서 백화점 5곳, 마트 115곳을 운영할 만큼 시장 확대에 의욕을 보였으나 2016년 사드(THAAD) 보복 사태 이후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나면서 사업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후 2018년 롯데마트 매장을 모두 팔면서 사실상 마트 사업을 철수했고 2019년에는 중국 내 제과·음료 사업에서 손을 뗐다. 백화점 역시 청두점을 제외한 나머지 매장을 정리해왔다. 그나마 남은 청두점도 최근 롯데쇼핑 이사회에서 지분 매각을 결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기존의 중국 편중을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돌리는 이른바 ‘남방 전략’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인도네시아에 롯데쇼핑 에비뉴를 출점한 데 이어 2014년 롯데쇼핑 플라자 하노이점(베트남), 2015년 다이아몬드 플라자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마트도 인도네시아에 49개, 베트남에 14개 등 총 63개의 해외 점포를 열었다. 롯데쇼핑은 반기 보고서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인수합병(M&A)과 함께 신규 출점을 병행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동남아·미국 등 발길 옮겨=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는 가장 큰 이유는 경영 환경 악화다. 인건비 증가, 중국 경제 위기로 생산·소비 거점으로서의 매력이 줄어들었고 미국과의 분쟁 심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 봉쇄 등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85.5%가 ‘지난 10년 대비 투자 환경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동남아 등 인건비가 낮은 국가로 다시 옮기거나 아예 공급망 확보, 소비 시장 공략 차원에서 미국·유럽 등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에 남은 기업들도 자동화 비중을 대폭 늘리는 식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모습이다. 현대차는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대신 북미 지역의 직원 규모를 2020년 1만 304명에서 지난해 1만 5953명으로 늘렸다. 중국 사업 비중이 높은 삼성전기의 경우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기판(FCBGA)의 해외 생산 거점을 베트남에 두기로 결정하는 등 ‘중국 의존도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올 4월 미국 제조·유통 업체 ‘더크렘샵’ 지분 65%를 약 1485억 원에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M&A를 추진하고 있으며 아모레퍼시픽도 북미 온라인 채널 등으로 시장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여전히 큰 시장이지만 외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크고 인건비 부담도 높아지는 등 사업을 위한 매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