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6일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사관이 한 건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아프가니스탄 재건 20년의 교훈’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아프간 정부가 붕괴하고 탈레반이 신속히 권력을 장악하기 하루 전에 나온 탓에 물밀듯이 쏟아진 미군 철수 소식에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13년에 걸친 재건 작업과 산더미 같은 자료, 760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꼼꼼히 들여다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미국 정부는 20년에 걸쳐 1450억 달러를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쏟아부었다”는 개괄적 서술로 보고서는 시작된다. 하지만 미국이 지불한 재건 비용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 8370억 달러의 전비가 추가로 지급됐고 3587명에 달하는 미군과 연합군이 전사했으며 아프간군도 6만 6000여 명이 사망했다. 특별감사관실이 내린 결론은 부정적이다. “아프가니스탄 재건과 미군 철수 후에도 자력으로 지탱이 가능하며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는 정부를 남겨두는 것이 목표였다면 현시점에서의 전반적 상황은 대단히 암울하다.”
왜 그럴까. 보고서는 일관성 없는 전략, 비현실적인 기대치, 불충분한 감독 등 구체적인 실패 원인을 조목조목 들춰냈다. 특별감사실이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종종 상호 충돌을 일으키는 미국의 모순된 목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아프간 경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과 동시에 만연한 부패를 끝내려 들었다. 현지의 군벌과 민간인 무장 세력을 약화시키고 싶어하면서도 신속한 안전 확보를 위해 그들과 손잡기를 원했다. 현지의 아편 생산을 끝내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부들의 소득을 빼앗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문제의 핵심은 아닌 듯하다. 2001년 패퇴한 탈레반은 전력을 재정비했고 2005년 이래 줄곧 세력을 확장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적군이 주도한 공격”은 2005년의 2300명에서 2009년에는 2만 3000명으로 늘어났고 이후 2만 1000명 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그사이에 미국의 전략과 전술, 병력 수준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라크와 아프간군 민간인 고문으로 활동했던 카터 말카시안은 미국의 실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탈레반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영감은 아프간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간단히 말해 탈레반은 이슬람을 위해 싸우고 점령군에 맞서 항전한다. 바로 이것이 아프간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가치다. 반면 점령국과 연합한 현지 정부는 이와 유사한 영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미국은 복잡한 아프간 내전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국외자였고 새로 꾸려진 아프간 정부는 통치에 필요한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지인들에게 아프간 정부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독히 타락한 정치 집단으로 비쳤다. 물론 옳은 평가다.
미국인들은 외국과 외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라크전의 경험이 혼란을 불러온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나라의 특성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미국의 정부 기구들은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아프간에 그대로 적용하려 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새겨야 할 더욱 중요한 교훈이 있다. 현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집단 사고에 쉽게 휩쓸리는 경향을 보이는 점이다. 워싱턴의 엘리트들은 아프간전을 유엔의 승인을 받아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 “좋은 전쟁”으로 바라본다. 아프간전이 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에 “올인”한 이들은 많은 정반대의 증거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애틀랜틱지에 실린 에세이에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아프간에서 저지른 미국의 “근본적 실수”는 “확고한 결의의 부족”이었다고 주장한다. 반은 맞는 얘기다. 미국의 지원에 높낮이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미국은 아프간과 영국이 치른 세 차례의 전쟁 기간을 합산한 연수보다 훨씬 오랫동안 아프간에 주둔하며 전투를 치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아프간에 머물렀던 소련에 비해 두 배 이상 오래 주둔했다.
엘리엇 애커먼은 20년 전쟁을 다룬 그의 새로운 저서 ‘제5막: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 종말’에서 미국이 아프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주저감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애커먼은 아프간에서 미국이 만든 것이라고는 판자로 지은 허접한 목조물뿐이라고 꼬집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영국인들이 그들의 영원한 제국을 상징하는 석조 구조물을 세운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비유다. 짐작건대 미국은 늘 두 개의 상반된 감정이 충돌하는 엉성한 널빤지 제국주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