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충격파에 에너지값 급등…"英 내년 물가 18%까지 치솟을 것"

■고물가·저성장 늪 빠진 영국
무역장벽 높아져 수입비용 껑충
수출·노동력 유입은 줄어 비상
곳곳서 임금인상 요구 파업까지
존슨 퇴임 앞두고 국정공백 우려도

신화연합뉴스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유럽 내에서도 유독 극심한 물가와 경제 불안에 신음하는 곳이 있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0.1%까지 치솟은 영국이다. 이는 같은 기간 독일(7.5%), 프랑스(6.1%), 이탈리아(7.9%)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은 물론 미국(8.5%)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정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최악의 고물가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영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지만 다음 달 퇴임하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 국정은 사실상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영국의 내년 1월 CPI 상승률이 18.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영국중앙은행(BOE)은 영국 인플레이션이 올 10월 13%에서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씨티은행은 가을 이후 에너지 요금 급등으로 고물가가 더 길게, 혹독하게 영국 경제를 덮칠 것으로 봤다.





영국이 유독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이유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가 꼽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브렉시트로 영국이 △주요 7개국(G7) 내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 △노동력 부족 △식품 수입 부족 △유럽으로의 수출 감소 및 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5% 증가한 반면 영국은 3.8%에 그쳤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EU 탈퇴로 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입 비용은 늘어난 반면 수출과 노동력 유입은 줄어들어 물가는 급등하고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도 더뎌졌다는 설명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팬데믹과 공급망 충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 등 글로벌 요인으로부터 브렉시트의 영향을 분리하는 것은 까다롭다”면서도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를 침몰시키지는 않았지만 호황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영국의 GDP 성장률이 0.5%에 그치며 G7 중 최하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으로 영국인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영국의 평균 실질 가처분소득이 올해 2.5% 감소하며 2026년까지 코로나 이전에 비해 7%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NIESR은 “영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2024년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구 수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700만 가구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더타임스도 “금리 인상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가계 가처분소득이 향후 2년간 3.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사상 최악의 생활수준 저하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BOE는 영국이 인플레이션으로 올 4분기 경기 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 상태다.


게다가 실질임금 감소에 분노한 영국인들이 저마다 파업을 선택하면서 경제 회복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전날 영국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펠릭스스토의 노동자 1900명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8일간 파업에 들어갔다. 영국 형사변호사협회(CBA)도 국선 변호사의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다음 달 5일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 철도 노동자와 지하철 노동자, 버스 운전사, 항공사의 파일럿 등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파업을 진행했으며 택배 회사 직원과 공항의 보안 담당자 등도 이달 말부터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글래스고 칼레도니아대의 키스 베이커 연구원은 신화통신에 “영국이 1926년 총파업 이후 최악의 평화 시 위기(peacetime crisis)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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